여기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철도역 꺋톱 오브 유럽’이다. 오른쪽에 계곡을 덮고 있는 거대한 알레치 빙하가 보인다. 그리고 톱 오브 유럽 위로 보이는 산정의 건물이 천문기상관측소 겸 야외전망대인 꺋스핑크스’다. 두 건물은 지하통로로 연결된다. 융프라우철도 제공
아웃도어브랜드 ‘노스페이스(North Face)’의 창업자 더글러스 톰킨스(미국)가 8일 칠레의 파타고니아에서 카약 전복사고로 숨졌다. 지금도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는 이 유명브랜드. 그런데 큰돈 들여 제품을 사고 있는 우리 소비자 중엔 그 브랜드가 뭘 뜻하는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노스 페이스’는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아이거’ 봉(해발 3970m)의 ‘북벽(北壁)’이다. 원래 이름은 독일어로 ‘노르드반트(Nordwand)’. 그걸 영어로 옮기면 ‘노스월(North Wall)’이지만 ‘노스 페이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페이스(face)’란 첫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 혹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메리엄 웹스터 사전). 그게 사람의 경우엔 ‘얼굴’이다. 그래서 ‘페이스=얼굴’로 굳어진 것인데 북벽이 그렇다. 실제로 가보면 아이거 봉이 아니라 북벽에만 눈이 간다.
아이거 봉의 얼굴 격인 북벽의 성가(聲價). 가히 전 지구적이다. 이걸 보러 찾아오는 이가 연간 세계적으로 83만3000명(2012년)이나 돼서다. 여름성수기엔 하루 4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북벽의 인기도 아이거 봉 혼자 끌어낸 것은 결코 아니다. ‘융프라우요흐 철도’라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엔지니어링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철도는 ‘베르너 오버란트’ 고원의 주산인 융프라우 봉(4158m)과 그 옆 묀흐 봉(4107m) 사이의 안부(鞍部·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지대)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오르는 산악철도다. 전기 동력으로 톱니레일을 오르내리는 이 빨간 열차의 구간은 아이거 봉의 북벽 아래 클라이네샤이덱(2061m)과 융프라우요흐의 지하역 ‘톱 오브 유럽’(3454m)을 잇는 9.34km. 꼬박 50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 산악철도의 80%는 터널이다.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인 아이거 봉 지하를 사선으로 관통한다. 기울기는 평균 25%(1m당 25cm씩 상승). 비교적 완만하지만 심한 경우는 그 열배나 된다. 철도개통은 착공 16년 만인 1912년 8월 1일. 103년 전이다. 도중에 설계자 아돌프 구에르젤러(1839∼1899)가 죽고 두 번의 폭발사고로 완공은 애초 계획보다 7년이나 늦어졌다. 묀흐요흐까지 철도를 놓아 융프라우 봉에 오른다는 최초의 계획도 미뤄졌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융프라우 봉에 역사(驛舍)를 만들었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정상역 ‘톱 오브 유럽’은 이름 그대로다. 유럽의 철도역 가운데 고도가 가장 높다. 이는 경관 역시 유럽 최고임을 의미한다. 그걸 증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7개국에 걸친 알프스산악엔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연유산이 단 하나(융프라우-알레치-비에치호른 지역)뿐인데 이 역이 그 중심이어서다. 거기서도 핵심은 알프스의 허다한 빙하 중에 가장 크고 긴 알레치 빙하. 톱 오브 유럽은 수백 m의 두께로 알프스 골짜기를 메우며 22km나 뻗어 내린 이 빙하의 시작점에 있다.
이 지하역엔 식당이 5개가 있는데 모두 창문 아래로 빙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역 밖은 만년설지대로 겨울을 제외한 세 계절 내내 스노펀 파크(튜브 스키 공중날기 등)가 문을 연다. 천문과 기상관측 시설로 지은 ‘스핑크스’까지는 지하통로로 연결됐다. 그곳 야외전망대(3571m)에선 설산봉우리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알프스 산악과 알레치 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원한다면 이 빙하를 스키나 트레킹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빙하 속을 파내어 만든 빙하 궁전도 있고 철도터널 안의 두 역(아이거반트, 아이스메어)에선 창문을 통해 빙하와 북벽의 실체를 좀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북벽지하의 이 두 역은 고도가 2865m와 3160m다.
융프라우철도와 함께 즐기는 베르너 오버란트 여행. 알프스 산악관광의 정수로 손꼽힌다. 그래서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게 한국인에겐 더 뚜렷하다. 30년 전 이미 유럽여행길의 ‘머스트 시(must-see)’로 굳어져서다. 그런데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고 있다. 당일 관광에서 사흘 체류의 체험여행지로 바뀐 것. 그 배경은 트레킹과 하이킹 붐이다. 현재 한국인의 융프라우지역 평균 숙박 일수는 2.5일. 대개가 3, 4일간 머물며 여유롭게 알프스산악의 풍정을 즐기고 간다는 이야기다. 인터라켄이라는 유서 깊은 호반도시와 그린델발트, 벵엔, 뮈렌 등의 산악마을에서 묵으며 아이거북벽과 세 자매 봉(융프라우, 묀흐, 아이거 봉) 아래 펼쳐지는 알프스 고원의 장관을 하이킹하며 즐기는 것이다.
한 스키어가 클라이네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 마을 아래로 이어진 트레일로 다운힐 하고 있다. 정면 왼쪽으로 아이거 봉과 북벽이 보인다.
그린델발트 마을을 향해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여행자. 뒤로 아이거북벽이 보인다.
피르스트의 설원을 날아서 내려오는 플라이어. 융프라우요흐 지역은 엄청나게 넓다. 주봉 아래 두 계곡으로 나뉜 세 개의 고원산악(피르스트, 클라이네샤이덱, 뮈렌)을 두루 즐기려면 일주일로도 부족하다. 거기에 배후도시인 인터라켄과 주변 호반까지 포함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보니 나흘을 지내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게다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은 또 어떻고. 빨간 알핀로제(야생화)가 피어난 초원에서 풀 뜯는 젖소의 방울소리를 들으며 북벽 아래를 걷는 여름의 경험, 발아래 드리워진 구름을 내려다보며 눈 덮인 클라이네샤이덱의 하얀 세상을 썰매나 스키, 보드로 활주하며 내려가는 겨울의 추억은 딴판이다.
그런 융프라우요흐의 겨울. 아쉽게도 체험한 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썰매와 스키, 설원하이킹으로 즐기는 겨울 융프라우요흐로 여행을 소개한다. 이제 막 시작된 융프라우요흐의 겨울여행. 산악열차 관광과 더불어 스키, 보드, 썰매와 설원하이킹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통해 온통 눈 세상인 베르너 오버란트의 특별한 겨울을 만끽하도록 구성한 융프라우요흐 철도 ‘겨울VIP패스’로 즐긴다. 이건 오로지 한국인 여행자만을 위한 스페셜패스다. 그러니 올겨울 유럽여행은 이 패스로 융프라우요흐에서 알프스의 겨울을 제대로 한 번 즐겨보자. 평생 잊지 못할 겨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스키: 한겨울 융프라우요흐 지역은 전체가 스키장으로 변하고 7개의 산악열차가 리프트가 된다. 스키지역은 크게 세 개(피르스트, 클라이네샤이덱, 뮈렌)로 나뉘고 리프트 26개가 총연장 160km의 스키트레일을 연결한다. 세 지역은 제각각 하루를 할애해야 할 정도로 대규모다. 가장 큰 곳은 아이거 봉의 북벽 바로 밑 클라이네샤이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원 중앙부. 발아래 구름을 보며 천상스키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엔 놓치지 말 것이 하나 있다. 스키월드컵의 랜드마크인 ‘라우버호른(2472m) 다운힐 코스’ 질주다. 실제 월드컵스키의 다운힐(활강)레이스 경기장으로 피니시 라인은 벵엔 마을(1274m)에 있다. 그린델발트(산악마을)에서 곤돌라로 오가는 피르스트(2168m) 지역은 오베르요흐(2500m) 아래 설원에서 한적하게 알프스 겨울의 낭만을 즐기기에 그만인 곳. 거기서도 꼭 해봐야 할 게 있다. 피르스트 곤돌라역의 베르크하우스(식당) 야외테라스에서 선 베드에 누워 즐기는 해바라기다. 아이거 봉을 감상하며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이 망중한의 오수. 스키의 즐거움을 능가하는 또 다른 매력이다. 뮈렌에선 거대한 빙하계곡 라우터브룬넨을 내려다보며 다운힐하는 짜릿한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단 중상급 이상에게만 추천.
썰매: 썰매는 스키 이상의 기막힌 체험을 보장하는 또 다른 매력이다. 할 수 있는 곳은 뮈렌을 뺀 스키장 두 곳. 스키와 달리 지역마다 지도에 썰매트레일을 표시해 두었다. 썰매 코스는 모두 네 개(총연장 50km). ①클라이네샤이덱∼알피글렌∼브란덱∼그린델발트∼그린델발트그룬드 ②클라이네샤이덱∼벵에른알프∼알멘드∼벵엔 ③맨리헨∼그린델발트그룬드 ④피르스트∼보어트∼그린델발트. ①코스 중의 ‘알피글렌∼브란덱’ 구간(3km)은 ‘아이거 런(Eiger Run)’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코스다. 아이거 봉의 북벽을 등지고 썰매를 타는 멋진 경관이 포인트. 조명시설이 있어 야간에도 즐길 수 있다.
여기서도 빼놓지 말아야 할 체험이 있다. 썰매를 마친 후 퐁뒤(불로 달군 냄비에 치즈를 녹여 빵에 찍어 먹는 전통음식)로 언 몸을 녹이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명소라면 아이거 런 구간의 브란덱 베르그하우스(식당)다. ②코스는 벵엔∼맨리헨 케이블카를 통해 ③코스와 연결된다. ①코스도 그린델발트그룬드∼맨리헨 곤돌라로 ③코스와 연결된다. 맨리헨을 경유해 그린델발트그룬드와 벵엔을 오가는 이 곤돌라와 케이블카는 VIP패스만 이용할 수 있는 ‘보너스’다.
설원하이킹: 융프라우요흐에선 스키장의 설원을 걸을 수도 있다. 그 트레일도 썰매처럼 지도에 그림으로 표시해 놨는데 총연장 100km. 가장 한가롭게 걷기에는 피르스트 지역이 좋다. 애견과 함께 걷는 이도 많다. 트레커들 역시 VIP패스로 체어리프트, 곤돌라, 케이블카, 그리고 산악열차를 타고 어디든 오간다.
주의사항: 액티비티 중엔 반드시 지도를 지녀야 한다. 워낙 넓어 헤맬 수 있어서다. VIP패스로는 지역 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니 수시로 행선지를 지도에서 확인한다. 그리고 모든 활동은 오후 4시 이전에 마치는 게 좋다. 리프트 가동이 중단되면 오갈 수 없는 곳이 많은데 이후엔 패트롤도 활동하지 않아서다. 단 아이거 런 지역만은 예외. 야간엔 열차운행시각에도 유의한다. 스키와 썰매 렌털은 클라이네샤이덱 철도역 앞 비스(Wyss)숍 이용. 패스 소지자는 15% 할인해 준다.
숙소: 융프라우지역 산중의 알파인마을을 추천한다. 인터라켄 지역은 대안으로 이용한다. 그린델발트 벵엔 뮈렌이 대표적이며 클라이네샤이덱 철도역에도 숙소(도미토리 형태)가 있다. 스키어라면 그린델발트를 강추한다. 피르스트와 클라이네샤이덱 뮈렌 등 모든 스키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편리해서다. 마을엔 실내수영장도 있다(패스 소지자 무료).
VIP패스(겨울): 내년 3월 28일까지 통용. 1∼6일권이 있으며 가격은 160∼230스위스프랑(약 19만1000∼27만5000원). 지역 내 7개 노선철도와 리프트 등 모든 탈 것을 이용할 수 있다. 단, 융프라우철도(클라이네샤이덱∼톱 오브 유럽)는 1회만 가능. 여기엔 톱 오브 유럽 역에서 사용가능한 쿠폰(8스위스프랑짜리·약 9550원) 포함. 컵라면(1개)으로 바꾸거나 식당(5개)과 기념품 상점에서 현금처럼 쓴다. 패스엔 스노펀(클라이네샤이덱 설원의 눈 놀이공원)과 피르스트∼슈렉펠트 플라이어(공중날기) 무료이용, 툰 호수유람선 하루패스 할인(50%), 인터라켄의 슈 레스토랑(퐁뒤 세트 등 10% 할인)과 키르호퍼 쇼핑(현금구입 8%·카드구입 5% 할인)도 제공. 구입과 문의는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 동신항운(www.jungfrau.co.kr) 02-756-7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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