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식단이 곧 좋은 잠을 만든다” 연구진은 평균 연령 28세의 건강한 미국 성인 34명을 대상으로, 하루 식단과 그날 밤의 수면 데이터를 여러 날에 걸쳐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앱을 이용해 식사 내용을 기록했고, 수면 데이터는 손목에 착용한 활동 추적기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분석 결과, 과일·채소 섭취량이 많을수록 수면 분절 지수(sleep fragmentation index)가 낮아졌다. 수면 분절 지수란 수면 중 자주 깨거나 수면이 중단되는 현상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로, 수면의 질 저하와 다양한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복합 탄수화물(통곡물 등)을 많이 섭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더 깊은 잠을 잤다. 식이섬유와 마그네슘 섭취가 많을수록 수면이 더 안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반면, 붉은 고기(소·돼지·양고기 등) 및 가공육(햄·소시지·베이컨 등) 섭취는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첨가당(식품 제조·조리 중 인위적으로 추가하는 당)은 수면 질과 관련이 없었다.
연구를 이끈 시카고대 수면센터의 에스라 타살리(Esra Tasali) 박사는 “단 하루의 식단 변화로도 수면 질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라며 “좋은 식습관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비용 효율적인 수면 개선법이다”라고 말했다.
■ 하루 5컵의 과일·채소, 숙면의 기준선 연구진은 하루 동안 과일과 채소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장량인 5컵 수준으로 섭취한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면의 질이 평균 16% 더 높았다고 밝혔다. 5컵은 400g 분량이다. 참고로 한국인의 하루 과일·채소 권장 섭취량은 이보다 약간 더 많은 500g이다.
수면의 질이 16% 높아졌다는 것은 단순히 수면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밤중에 깨어나는 횟수가 줄고 깊은 수면(비REM 수면)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컬럼비아대 수면·생체리듬연구센터의 마리-피에르 생옹즈(Marie-Pierre St-Onge) 박사는 “많은 사람이 ‘잠을 잘 자게 도와주는 음식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번 연구는 그 답을 보여준다”라며 “작은 변화가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 더 나은 잠은 우리의 선택 안에 있다”라고 말했다.
■ 왜 식단이 수면에 영향을 줄까? 연구팀은 과일과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 미네랄(특히 마그네슘), 항산화 물질이 체내 스트레스 반응과 염증을 완화해 신체의 긴장을 줄여주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통곡물 등 복합 탄수화물은 서서히 에너지를 방출해 밤새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돕는다. 이러한 혈당 안정성은 뇌를 차분하게 하고 신체를 이완시켜 깊고 지속적인 수면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붉은 고기와 가공육에는 포화지방과 나트륨이 많아 위장 부담을 높이고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가공육의 질산염과 보존제 성분이 염증 반응을 일으켜 수면 호르몬(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할 위험도 있다.
■ “오늘의 식탁이 오늘 밤의 잠을 결정한다” 이번 연구는 ‘잠이 부족하면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 특히 지방과 설탕 섭취량을 높인다’는 기존 연구의 반대 방향, 즉 ‘건강한 식단이 수면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특별한 치료 없이 하루 세 끼의 균형 잡힌 식사만으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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