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부위 돌아다니며 세포 성장 돕는다… 인체 섬모 ‘바이오로봇’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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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구팀 국제학술지에 발표

색 농도를 이용해 바이오로봇 움직임에 관여하는 섬모 무리를 표현한 이미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제공
색 농도를 이용해 바이오로봇 움직임에 관여하는 섬모 무리를 표현한 이미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제공
과학자들이 인간 세포를 이용해 바이오로봇을 만들었다. 자가 조립 능력이 있는 이 로봇은 실험실 환경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을 보였다. 사람의 척수나 망막 신경 복원 치료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은 인간 세포로 만든 바이오로봇을 개발해 사람의 몸에서 손상된 부위를 치유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에 30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부터 날카롭게 깎은 연필 너비에 해당하는 다양한 크기의 다세포 로봇으로 자가 조립 능력이 있다.

●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 조립도 스스로

터프츠대 연구팀은 버몬트대와의 공동 선행 연구를 통해 개구리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만든 ‘제노봇’이란 바이오로봇의 부상 치유 능력을 확인했다. 당시 연구원들은 이를 ‘생물학적 기계’로 불렀다. 이 연구에서는 바이오로봇의 능력이 양서류 배아에서 파생된 것인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의 세포를 통해서도 재현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마이클 레빈 터프츠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인간의 세포를 이용한 바이오로봇을 만들고 그 능력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성인 기증자로부터 ‘섬모’라고 불리는 털 형태의 돌기가 있는 세포를 얻어 바이오로봇을 만들었다. 세포의 섬모는 작은 입자들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가령 목에 있는 이물질을 내려보내기 위해 기침을 하거나 목을 가다듬을 때 섬모가 이를 돕는다.

연구팀은 섬모가 있는 장기 유사체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바이오로봇을 개발했다. 이를 실험실 접시에서 관찰한 결과 섬모를 이용한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조립하는 능력이 확인됐다. 어떤 로봇은 섬모로 완전히 뒤덮이는 형태로 조립됐고 어떤 것은 한쪽 면만 섬모로 덮였으며, 구형의 모양을 갖는 것도 있었다. 크기는 30∼50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로 다양했다. 움직임 역시 직선 이동, 원 그리기, 꿈틀거리기 등 다양했다. 이들은 스스로 모양을 만들었으며 자연 생분해되기 전까지 실험실 조건에서 45∼60일 생존했다.

연구팀은 바이오로봇 제조 과정을 건축에 비유하며 “돌과 벽돌이 아치형 입구나 기둥 등 여러 구조로 배열되듯 세포들 간의 상호작용 재프로그래밍을 통해 다세포 구조를 가진 로봇들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척수나 망막 신경 손상 복구 등 활용 기대

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로봇은 실험실 접시에서 키운 인간 신경세포의 표면에서 움직이며 세포층에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한 성장을 촉진하며 치유를 유도하는 능력을 보였다. 로봇 집합체에 의해 덮인 영역에서는 신경세포가 성장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로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레빈 교수는 “DNA 변형 없이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며 손상 부위를 가로질러 신경세포의 성장 촉진을 유도한다는 것은 흥미롭고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라며 “치유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서류가 아닌 인간 세포를 활용했다는 점은 이 로봇이 인체에 들어왔을 때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면역 억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특히 환자의 세포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로봇은 환자의 몸에서 치료 작업을 수행하고 몸속에서 분해돼 쉽게 재흡수된다는 장점도 있다. 몸속에서 번식을 한다거나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 위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인간 유래 바이오로봇을 다양한 치료 영역에서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척수 또는 망막 신경 손상 복구, 박테리아 또는 암세포 인식, 표적 조직에 약물 전달 등이다. 연구팀은 “세포는 벽돌과 달리 서로 소통하고 능동적으로 구조물을 만들 수 있으며 움직임이나 신호를 감지하는 등 많은 기능이 프로그램화돼 있다”며 “향후 재생, 치유 등을 위한 새로운 치료 도구 개발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세포#성장#인체#섬모#바이오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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