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평등해질수록 성향 차이 더 커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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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獨 연구팀, 76개국 조사결과… 경제 발전도 성향 차이에 영향


앞에 1만 원 지폐 10장이 놓여 있다고 해보자. 자선단체와 자신이 나눠 가질 수 있다. 결정은 혼자 할 수 있다. 얼마를 내고 얼마를 자신이 가질까. 심리학과 경제학에서 유명한 이 실험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선단체에 더 많은 금액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 학자들은 이를 ‘이타심에 대한 선호가 더 높다’고 해석한다. 이타심 외에 신뢰, 잘한 일에 대한 칭찬 등에 대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높은 선호를 보인다. 반면 남성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참는 상황, 나쁜 일에 대해 응징을 하는 데에 여성보다 높은 선호를 보인다.

최근 성별에 따른 이런 성향 차이가 대규모 국제 통계 연구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또, 경제가 발전하고 남녀가 평등해질수록 이 차이가 오히려 더 커진다는 사실도 새롭게 발견됐다. 아르민 팔크 독일 본대 경제학과 교수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조사평가기관 갤럽의 2012년 세계조사(World Poll) 자료 중 세계 선호도 조사(GPS) 결과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8일자에 발표됐다.

팔크 교수팀이 수집한 자료는 76개국 8만 명의 정보다. 여기에는 이타심, 위험 감수, 인내, 선한 일에 대한 칭찬 등 6가지 가치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포함돼 있다. 이 가치관은 경제와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동력으로 연구자들이 흔히 꼽는 것들이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이들 가치 각각에 대해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불 의사’를 물었다. 예를 들어 위험 감수의 경우 “적지만 정해진 금액을 받을 것인지, 절반은 꽝이지만 당첨되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복권을 받을 것인지” 묻는 식이다. 복권을 선택하면 위험 감수 선호가 높다고 판단한다. 이런 식으로 6개 가치에 대한 성향을 조사한 뒤, 조사 대상국을 1인당 국민소득과 성평등지수(GEI)에 따라 각각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그 뒤 그룹별로 6개 가치관에 대한 남녀 차이를 구했다.

연구 결과, 전체적으로 여성은 이타심과 신뢰, 선한 일에 대한 칭찬의 가치를 남성보다 높이 평가했다. 악한 일에 대한 응징과 위험 감수, 인내는 남성에 비해 낮게 평가했다. 여기까지는 기존 조사와 일치하는 결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평등 의식이 높고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일수록 이런 남녀 간 성향 차이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이는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이 붕괴되고, 성에 따른 차이도 작아질 거라고 주장하던 기존 가설과 배치되는 것이다.

팔크 교수팀은 “두 성의 성향 차이가 경제와 성평등 의식이 발달할수록 줄어들지, 반대로 커질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며 “이번에 차이가 커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두 성이 더 평등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곳일수록 여성이 원하는 가치를 접하고 선택하기 쉽다는 점을 원인으로 들었다. 또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선호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유라고 밝혔다.

팔크 교수는 “남녀가 물질적, 사회적 자원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성별 선호도를 드러내는 데 중요하다”며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영향에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이 남녀 사이의 선호도 차이를 더 크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성별#성평등 지수#선호도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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