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동아]“현대의료기기 쓰려면 의사 면허 취득해야” VS “한-의 협업, 국제적 추세 정확한 진단 위해 필요해”

  • 동아일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법안, 醫-韓찬반 ‘팽팽’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 문제를 놓고 의료계가 시끄럽다. 대한의사협회는 10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 원점 재검토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불허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정책을 강행해서는 안된다”며 반대 집회를 가졌다.
의사와 한의사 간의 공방은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저마다 국민의 권리와 편의가 침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투쟁이라고 강변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법안은 9월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11월 23일 한의사의 의과 의료기기 허용 법안에 대해 의료계와 한의계, 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한 협의체 구성을 전제로 법안 심의를 전격 보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한의사에게 의료기기를 허용하는 법안 심사를 유보하고 의료계와 한의계 간 논의하라고 권고했다. 복지부의 중재 속에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합의안을 도출해 원만한 결론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이다.》
○의사 측 주장

김승협 대한영상의학회 회장
한의계, ‘과학이냐’에 먼저 답해야


김승협 대한영상의학회 회장
김승협 대한영상의학회 회장
의료계는 과학을 기반으로 진단과 치료를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한의학은 많은 부분이 경험에 의존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치료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의학적 진단에 과학의 산물인 X레이 검사를 하겠다는 것은 한의학도 과학이라는 것인데 한의가 과연 현대 과학의 테두리 안에 있는가에 한의사들은 먼저 명확히 대답해야 한다.

새로운 의료기술을 전문가들이 검증해 도입하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에는 한의의 새로운 의료기술도 평가대상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신한방의료기술평가제도’를 별도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의가 현 제도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과학적으로 검증이 어려워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한의계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가를 주장하기 이전에 과학적 검증부터 받아야 한다. 치료약제에 대해 명확한 성분 분석과 공개 검증 등 과학적 의학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어

X레이 검사는 방사선이 발생하는 검사로 나이가 어린 환자일수록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 방사선 발생 장치는 잘 관리하고 검사 결과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사용해야 한다.

한의대에서 영상의학을 몇 학점 이수했다고 검사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는 한의사들의 주장은 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 장치는 체중계나 체온계를 보는 것같이 누구나 눈금만 읽으면 해석할 수 있는 단순한 검사가 아니다. 전문가만이 해석 가능한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분야다. 물리학적 원리, 심도 있는 해부, 병리, 생리학적 지식과 고도로 훈련된 의사의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진료 행위다.

이성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의과 의료기기, 의학적 해석에 최적화


이성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이성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의학과 한의학은 치료 원리가 다르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진단기기들은 의학적 원리에 의해 해석·진단·치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방의료행위와 전혀 맞지 않는 의과 의료기기로 진단하겠다는 한의계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의사들은 진단은 의학으로, 치료는 한의학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한의 치료에 진단기기가 필요하다면 한의학적 원리에 맞게 만들어진 기계들을 사용해야 한다. 학문의 기반이 다르고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진단기기에 대한 판독 능력이 없는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수 없다. 비전문가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그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

전문 분야가 명확하지 않은 한의계의 의료전달체계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의사는 각 분야 전문의들이 자신의 전문 질환만을 본다. 한의사가 의과용 진단기기를 잘못 해석해 상급병원으로의 의료전달이 필요한 환자를 보내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의료행위는 면허 범위 안에서 해야


한의학의 국제화, 과학화는 결코 ‘한의사가 의사처럼 보이거나 진료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든 한의사든 의료법안에서 부여받은 면허 범위의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진이 필요하다면 영상의학과 교수와 논의하라.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의사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 주장은 의료법과 면허의 틀을 바꾸려는 것이다.

환자의 편의보다 안전이 더 중요해


모든 진단은 치료의 개념을 포함한다. 의사의 진단으로 질환을 감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검사는 이런 총체적인 진단 치료 과정의 일부다. 환자의 편의를 위해 진단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의사들의 주장은 환자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한의사 측 주장

박성우 한방초음파학회 회장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은 의사들의 선입견


박성우 한방초음파학회 회장
박성우 한방초음파학회 회장
한의학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의사들의 오래된 선입견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의학적 치료 중에서 완전히 정립된 것은 얼마나 되는가. 과학은 언제나 발전 단계에 있다. 의료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암 치료법도 완전하지 못하다. 과학적 치료 방법이란 항상 더 완성된 이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과 더 명확한 과학적 이론이 밝혀지면 지금 사용하는 치료 방법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의학이든 한의학이든 경험론적 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사들은 인정해야 한다.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의 하버드대에서도 한의학 논문들이 매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사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한의학의 근거가 되는 수많은 논문들이 국내와 해외 유수 대학들에서 발표되고 있다.

의료계 주장, 환자 위한 것 맞나 의심


일례로 환자가 다리를 삐끗해서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들은 병변 부위를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할 수 있다. 촉진(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서 진단하는 것)으로 90% 질환을 확인했다면 영상기기를 이용해서는 100% 확진할 수 있다. 임신 여부에 따라서도 한의의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맥을 짚어 알 수도 있지만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면 환자와 한의사 모두 정확하게 확인하고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데 이런 진단을 위한 기기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의료계가 과연 환자를 위한 주장을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조현주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
과도한 국민 의료비 지출 줄일 수 있어


한의사는 국가에서 정한 의료인이다. 한의사가 볼 수 있는 질환의 범위가 따로 규정돼 있지 않
조현주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
조현주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
다. 진단·치료 등의 의료행위나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행동하는 데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현재는 한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 영상의학과에 환자를 의뢰하고 싶어도 의료계와의 정상적인 의료전달 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아 망설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의사들이 우려하는 의료과실에 대한 문제는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 한의사가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전달하지 않고 무리하게 치료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은 과하다.

면허 범위와 전문가의 의미 구분해야


오랜 기간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수련을 받으며 완성되는 전문 지식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도구의 독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뿐만 아니라 타과 전문의 혹은 일반의들도 영상의학적 검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이를 방증한다.

한의대에서도 진단 관련 교육 실시


현재 한의대에서 이뤄지고 있는 진단 관련 기초 교육은 한방진단학, 양방진단학, 진단검사의학, 영상의학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임상 각 과에서 해당하는 검사와 진단법 등에 대해 질환별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1차 진료를 위한 일반의로서 가져야 할 진단과 각종 검사에 대한 교육은 한의대 및 병원 실습에서 충분히 시행되고 있다.

물론 한의사는 한의학의 전문가이지 영상의학 전문가는 아니다. 당연히 영상의학 전문의와의 협업이 필요하고 전문 분과로 세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상호 협업은 양측 모두에게 필요하다.

면허 범위와 전문성은 다른 의미다. 전문의도 오랫동안 환자를 보지 않으면 전문성은 약해진다.

진단권을 가진 한의사들이 불합리한 규제에서 자유로워져 영상의학적 검사들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진다면 영상의학과 전문의와의 협업, 영상의학과로의 환자 전달과 상위 검사 및 판독 의뢰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국제적 추세를 봐도 의료계는 협업,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현대의료기기 허용법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