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메디 Talk Talk] 걸음마 수준 ‘완화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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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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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 9%만 호스피스 완화의료 혜택

울랄라세션 리더 임윤택 씨(31)는 4기 위암 환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 엠넷의 ‘슈퍼스타K 3’에서 우승했다. 많은 사람이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해마다 7만여 명이 암으로 숨지는데 말기암 환자는 대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남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내는 셈. 그렇다 보니 임 씨처럼 남은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제대로 치료받을 의료기관도 마땅치 않다. 환자를 관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의사도 있다. 이 때문에 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 내 가족이 말기암 환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와 국립암센터의 김열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에게 들어봤다.

▽이진한 기자=가족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말기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을 때 환자에게 알려주는 방법인데요.

▽허대석 교수=예전만 해도 환자에게 말해주는 것을 의사도 금기시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미리 알려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는 편이 좋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환자가 병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환자와 가족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조차 단절돼 서로 힘들어집니다. 치료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가족이 함께 내리지 않고, 혼자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나중에는 후회합니다.

▽김열 과장=국립암센터에서 말기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완화의료병동에 입원할 때까지 환자 3명 중 1명은 자신이 말기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환자가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할지 아니면 집에서 여생을 보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자기 결정권)를 위해서라도 암이나 치료법에 대해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허=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말할 때 심리상태를 잘 파악해 환자의 갈등이나 문제를 잘 들어줘야 합니다. 투병 의지를 꺾지 않고도 전달할 방법은 많습니다. 가령 ‘이제 맞을 수 있는 항암제가 없다’고 직접 말하기보다는 ‘언제든지 항암제를 맞을 수 있으나, 지금 체력으로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 안 맞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식이죠.

▽김=여명이 3∼6개월 남았다면 삶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가족 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환자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는 소중한 기간이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병원보다는 집같이 편안한 공간에서 임종하기를 원합니다.

▽이=하지만 가족은 환자에게 살 수 있다는 꿈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허=치료로 이득을 얻는 측면과 부작용으로 손해를 보는 측면을 잘 고려해야 합니다. 여명이 3∼6개월 남은 상황에서 새로운 항암제를 시도할 수도 있으나, 기적의 치료제가 아닌 이상 부작용으로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임종 직전 한 달 사이에 항암제를 맞는 비율이 30% 가까이 됩니다. 외국은 10% 미만입니다. 의사들이 무의미한 항암치료를 중단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말기환자를 대하는 관행도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김=담당 의사가 더는 해 줄 것이 없다고 말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시기가 마지막 삶을 편안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말기에 이른 환자는 대부분 통증과 소화장애, 복수, 호흡곤란 같은 신체적 고통과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신 심리적 고통을 심하게 겪습니다. 누군가는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그렇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 이용 현황이 낮아서 문제죠.

▽김=네, 맞습니다. 전체 암으로 인한 사망자의 9%만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습니다. 미국은 전체 질병사망자의 41%가, 대만은 말기암 환자의 20% 정도가 이용합니다.

▽허=대만이나 일본은 말기암 환자를 위한 법이 잘 정비돼 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말기암 환자를 위해 일본은 1인당 하루 진료비로 3만7000엔(약 54만 원)을 지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니 걸음마 단계입니다.

▽이=호스피스 완화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은 없을까요.

▽김=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현재 43곳, 722병상 정도입니다. 수가 적고, 대도시 중심이어서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이용률을 높이려면 인프라를 늘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또 환자가 원하는 곳에서 돌봐야 하므로 입원시설 중심의 인프라 확충뿐 아니라, 선진국처럼 가정에서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허=현재는 수도권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암환자가 몰리지만 이들 병원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합니다. 우선 급한 일은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나 보호자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 상담하는 것입니다. 전문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의사와 팀을 만들어 상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국가가 지원해도 환자와 가족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정도 지원은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병원들이 이를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어느 말기암 환자는 마지막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을 위해 설거지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종을 한두 달 앞둔 말기암 환자를 여러 이유로 병원에 데려옵니다. 일본처럼 간호사가 집에 찾아가 매일 통증을 치료하고, 의사가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진료하는 시스템은 과연 먼 이웃나라만의 이야기일까요. 현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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