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주인 자주 바뀌고… 개업-폐업 왜 반복하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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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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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빼먹는 ‘사무장 병원’

《2005년 1월 대구 달서구에 개업한 A의원.

의원 문을 연 지 4개월 만에 간판을 내리고는 경북 고령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령군에서 인지도를 넓히는가 싶더니 3개월 뒤 문을 닫았다.

A의원은 다시 대구로 들어왔다.

서구에서 4개월, 북구에서 3개월, 동구에서 8개월간 문을 열었다.

환자가 없어서 문을 닫고 새로 개업하는 거라면 이전에 병원을 열었던 지역은 피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A의원은 달랐다.

대구 서구, 동구, 북구에서 약 1년 반씩 시차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가 원래 있던 지역 근처에 또 병원을 열었다.

A의원이 5년간 병원을 개업했다 폐업한 횟수는 총 13회.

한 의사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평균 4개월만 진료를 한 뒤 폐업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 다시 개업한 것이다.》
#5년간 13번 개-폐업한 병원

진료비 허위청구 돈 챙긴 뒤
당국 감시 피해 ‘치고 빠지기’

보건복지가족부가 수시로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병원을 대상으로 칼을 빼들었다. 물론 환자가 없어 경영난을 겪다가 병원을 폐업한 뒤 다른 지역에서 개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진료비 허위청구나 부당청구로 돈을 챙긴 뒤 보건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나려고 폐업을 일삼는 병원도 꽤 있을 것이란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이른바 개업과 폐업이 자유로운 점을 악용해 ‘치고 빠지기’를 하는 병원이 상당히 많다는 것.

○ 1142곳, 4년 동안 3회 이상 개업과 폐업 반복

복지부가 2005∼2009년 병원 개·폐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3회 이상 개·폐업한 대표의사는 1142명이었다. 이 중 6회 이상 개·폐업을 한 경우도 무려 66명이나 됐다. 복지부는 A의원과 같이 지나치게 개업과 폐업을 자주 반복한 의원 30곳을 골라 상반기에 실사를 벌일 계획이다. 2005년 10월 같은 조사를 벌였을 때 30곳 중 20곳(66.7%)이 평균 6개월간 3000만∼4000만원의 진료비를 허위청구 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병원은 그대로인데 주인만 자주 바뀐 경우도 많았다. 262곳은 이 기간 대표가 3회 이상 바뀌었다. 이 가운데 67곳은 4회, 11곳은 5회, 5곳은 6회 대표가 바뀌었다. 심지어 13회 이상 대표가 바뀐 곳도 있었다. 현행 의료법상 병원과 의원은 법인이나 의사만이 개설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런 병원의 대부분이 의사를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고 수익을 챙겨 가는 ‘사무장 병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의사는 명의만 빌려주고 수익은 투자자가 챙겨

경기지역에서 신장투석실을 연 B병원이 대표적이다. 신장투석실은 고가의 장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금만 10억∼15억 원이 들어간다. B병원은 여러 명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들여 신장투석실을 만들었다. 오래지 않아 이 병원 투자자들 사이에 이권 다툼이 벌어졌다. 한 투자자가 독립해 서울 관악구에 또 다른 신장투석실을 만들었다. 이 투자자는 70대 의사를 대표로 세웠다. 그러나 실제 모든 환자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 투자자였다.

광고와 마케팅에 많은 돈을 쓴 만큼 수익도 많이 뽑아내야 했다. 복막투석에 쓰는 재료는 위생상 1회 사용으로 제한돼 있지만 여러 번 재활용해 썼다. 예상외로 큰 수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투자자는 병원을 폐업하고, 강남구로 자리를 옮겨 다시 개업했다.

신장투석을 주로 하는 병원의 경우 특히 사무장병원이 활개를 칠 우려가 있다. 보통 투석 1회에 환자가 부담해야 할 진료비는 2만6000원 정도다. 희귀난치성질환자로 지정이 돼 있다면 이보다 더 줄어든 1만3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환자 1인당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불하는 돈은 8만 원 정도. 이 때문에 일부 사무장병원은 개인 진료비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환자를 많이 유치하면 개인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아도 건강보험 급여비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이 나기 때문. 환자가 많아지면 투석 횟수를 허위로 신고하기도 한다.

○ 의료계는 적극 환영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의 조사방침에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번 기회에 ‘사무장 병원’이나 편법 진료를 하는 병원을 솎아내면 의료계가 많이 깨끗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좌훈정 대변인은 “병원 운영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건물 임대료가 싸거나 환자가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아 새로 개업을 하는 의사도 많다”며 “그러나 지나치게 자주 개·폐업을 반복했거나 대표가 바뀌었다면 십중팔구 사무장 병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좌 대변인은 의사면허를 대여하는 행위도 근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면허 대여란 나이가 많아 진료를 하기 어려운 의사나 병원을 개설할 자금이 부족한 젊은 의사가 돈을 받고 면허를 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 경우 면허를 빌려준 사람을 대외적으로는 병원 대표로 내세우고,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실제 진료를 담당하기도 한다. 의료사고가 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올 수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기획영상 = 폐업직전 지방병원의 부활…무슨일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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