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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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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간 첨단의료복합단지 예산이 5조6000억 원이라지만 이 중 정부 지원은 2조 원이다.
두 곳이 선정됐으니 한 곳에 1조 원으로, 매년 300억∼400억 원에 불과하다. 한 곳에 모두 투자해도 부족할 판에
쪼개기만 하니, 첨복단지도 개별 의료산업단지와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셈이다.”
의료단지 업무를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말이다.
실제 연간 300억∼400억 원의 지원금으로 글로벌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대부분 1년 연구개발비로 1000억 원 이상을 쓴다.
신약 하나를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비만 1조 원이 넘는다. 》
지자체 ‘미니 첨복단지’ 과욕
중복투자 자원낭비 우려 커
신약-의료 등 역할 분명히
글로벌기업-고급인력 유치를
항체 신약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 ‘스크립스연구소’도 지난해 3800억 원(약 3억24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썼다. 꾸준한 투자 덕분에 1961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화학 분야 2명, 의학 분야 1명 등 모두 세 명을 배출했다. 반면에 국내 첨복단지에 책정된 연구개발비는 매년 30억 원. 2038년까지 예정된 연구개발비를 다 합해도 900여억 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여러 개의 의료단지가 아니라 ‘국제경쟁력을 갖춘 의료단지’ 하나다”라고 말한다.
○ ‘각개 전투’로 경쟁력 떨어질 수도
일부 전문가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첨복단지가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신약, 의료기기, 임상시험 등 개발 방식이 판이한 분야를 굳이 한곳에 모아 원점에서부터 육성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가령 10년 넘게 약물 개발에만 전념한 기업들이 입주한 대덕특구는 ‘첨복단지 싸움’에 휘말리기보다는 바이오기술을 이용한 ‘신약개발 특화 단지’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식이다. ‘파멥신’이라는 벤처기업은 항암항체 물질기술을 개발해 7월 세계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로부터 100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의료기기 분야도 비슷한 상황이다. 박성빈 원주의료기기 테크노밸리 기획실장은 “원주가 1994년부터 15년이 넘는 기간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의료기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는데, 이를 활용하지 않고 기초부터 새로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국가적인 자원낭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자체마다 별도의 의료단지를 조성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는 막대한 중복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천, 경기 등 일부 지자체는 첨복단지와 다를 것 없는 모델의 의료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미니 첨복단지’가 여러 개 생기는 셈이다.
○ “첨복단지 중심 의료단지 네트워크 필요”
의료단지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첨복단지와 구별되는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첨복단지가 바퀴의 중앙(허브) 역할을 하고, 각 의료단지를 바퀴살처럼 네트워크로 엮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첨복단지는 자체 성장뿐 아니라 개별 의료단지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첨복단지로 선정된 지자체와 탈락한 지자체가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개별 지자체가 구입하기 힘든 고가의 첨단 의료장비를 중앙정부의 지원하에 첨복단지에 설치하고, 다른 지역의 의료단지가 이 장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학병원과 의료진이 풍부한 대구는 의료기기 업체들이 오래전부터 기술개발을 해 온 강원 원주와 협력이 가능하다. 또 바이오 기업이 많은 충북 오송은 전 세계 50개 연구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인천 송도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첨복단지를 중심으로 여러 의료단지가 함께 글로벌 마케팅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국내 기업만 첨복단지에 입주시킬 경우 자칫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술을 외국에 널리 홍보할 수 있고 협력을 통해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누구든 손을 잡는 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란 것. 김덕원 연세대 의공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만 겨냥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글로벌 마케팅 기업이 첨복단지에 입주하겠다면 굳이 막을 게 아니라 적극 유치해 글로벌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해줄 뿐, 실제 의료단지의 성패는 민간기업이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실험정신이 강한 기업과 고급 기술인력이 의료단지에 모여야 한다. 그러나 일부 의료단지를 뺀 나머지 단지는 기업 유치 실적이 저조하다.
심지어 첨복단지로 선정된 대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기업 유치다. 대구의 한 공무원은 “최근 간담회를 열었는데 제약사 22곳이 법인세 장기 감면, 토지 무상임대, 핵심 연구진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요구해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원주의 한 의료기기 업체 대표는 “큰 이득이 없으면 굳이 첨복단지로 갈 생각이 없다”며 “더 많은 당근을 내놓는 단지가 사실상 제1의 첨복단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상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클러스터 TF팀장은 “첨복단지의 목적은 기초학문 연구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다”라며 “돈이 되고,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업체를 적극 발굴해 영입하는 노력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원주=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첨복단지 후보지 선정 대구 신서지구 가보니…
8월 첨단의료복합단지 후보지로 선정된 대구 동구 신서동 첨복단지 조성지구 현장에서는 현재 터파기, 도로공사, 하수 및 오수공사, 지하매설물 설치 같은 기반공사가 한창이다. 지난달 24일 현장을 찾았을 때 100만 m² 규모의 첨복단지조성지구에서는 공사 차량과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물을 뿜어대는 트럭들로 분주했다.
첨복단지 뒤쪽은 팔공산 한 자락인 초래봉, 앞쪽은 금호강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역이다. 2007년 신서혁신신도시로 지정돼 도시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곳이기도 하다. 첨복단지 조성이 끝나는 2012년부터는 2만여 명이 입주한다. 12월 조성계획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단지 설계를 거쳐 내년부터 시설공사에 착수한다.
최태형 첨단의료복합단지기획팀 주무관은 “KTX를 이용할 수 있는 동대구역과 10km 거리에 있는 데다 대구공항과도 가깝다”면서 “부근에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해 최상의 교통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도심 의료기관과도 접근성이 좋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으로 내년 초 건립 예정이던 신약개발지원센터, 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같은 핵심시설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져 내년 말쯤 착공에 들어간다. 첨복단지가 충북 오송과 대구 두 곳으로 나눠져 동시설계에 들어가면서 예산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는 중점 육성 분야인 합성신약, 첨단의료기기 외에 의료산업 여건 변화를 반영해 바이오 신약과 정보기술(IT)및 의료기기를 합친 IT융·복합 산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바이오 신약은 합성신약과는 달리 인체 항체를 활용한 항암제 개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경북대병원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IT융·복합 산업을 위해 계명대병원은 최근 의학과 공학을 합친 의용공학과를 의대에 신설했다. 향후 첨복단지 산업에 참여할 연구원 지원뿐만 아니라 IT융·복합 의료기기 개발에도 참여한다.
이상길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장은 “전국 IT 비중의 30%를 담당하는 구미의 전자단지와 유기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다”며 “초음파 기기라든지 옷만 입으면 자동으로 심전도 체온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해 산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제약사와 바이오업체를 유치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제약사 유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명문제약, 정우신약을 포함한 22개 국내 제약사가 단지 조성 현장을 둘러봤을 뿐이다.
제약사들의 가장 큰 부담은 3.3m²당 100만 원이 넘는 입주지역의 땅값이다. 또 제약사를 유치해도 연구원들이 지방에 오는 것을 꺼리는 것도 문제다.
이 단장은 “이곳에 입주하는 연구원에게 연구 성과에 따라 기본급의 20∼30%에 이르는 인센티브와 중고급형 타운하우스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인근에 국제학교와 단지 내에 과학고가 각각 2011년 문을 열 예정이어서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또 “당장 입주가 확정된 제약사는 없지만 규모가 큰 2, 3개 제약사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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