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지영]고령화시대 건강지킴이 ‘홈 헬스케어’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50대 중반의 고혈압 환자 P 씨는 병원에서 혈압을 재고 나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혈압 수치에 별 호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혈압 약제의 용량과 약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갔고, 일상생활에서 기운이 없고 쓰러질 것 같은 저혈압 증세가 자주 와서 불안해졌다. 이 환자는 백의 효과(White Coat Effect)가 있었는데도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 수치만을 근거로 약물을 조절한 점이 문제였다.

백의 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이란 평상시 혈압은 정상범주에 속하지만 병원에서 측정하면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고혈압 환자의 백의 효과란 운동 및 식이조절, 항고혈압제로 평소 혈압이 잘 조절되는데도 병원에 와서 측정하면 혈압이 높아지는 증상을 말한다. P 씨의 경우 평상시 혈압 수치를 의료진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했다면 좀 더 올바른 처방과 적절한 혈압 조절이 가능했다. 평상시 건강 상태를 본인은 물론이고 의료진이 잘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의 65세 이상 인구 중 86%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질병이 만성화, 장기화되면서 건강관리는 환자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가고 있다. 하지만 건강에 무신경하다가 위급한 상황을 겪고 나서야 건강에 관심을 갖는 만성질환자가 아직 많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홈 헬스케어 시스템은 고령화 시대에 환자 스스로 간편하고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홈 헬스케어는 집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의료 진단기기를 통해 측정된 환자의 혈압, 혈당 수치 등의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지속적인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함으로써 1차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한 의료서비스다. 최근엔 혈압, 당뇨 등 일반 건강 데이터에만 그치지 않고 식사, 운동 등의 생활습관 정보도 관리해 통합 건강관리 시스템의 단계에 도달했다.

연세의료원이 최근 실시한 ‘고혈압 환자 관리를 위한 홈 헬스케어 서비스의 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중 하나가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에 대한 평상시 주의력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가정에 설치한 단말기를 통해 본인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건강관리에 대한 환자의 관심과 실천의지를 고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운동, 식사, 흡연, 음주 등 건강에 밀접한 생활습관도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개선하도록 제안하므로 합병증의 위험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홈 헬스케어는 의사에게도 혜택을 준다. 홈 헬스케어의 활성화로 의사는 단순질환 환자보다는 병원 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 또 홈 헬스케어를 통해 생성되고 축적된 환자의 건강 정보를 참고하여 좀 더 정확한 진료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선진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홈 헬스케어 시대를 열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 기업이 외국 회사와 함께 홈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했는데 연세의료원의 임상적 검증을 통해 유용성이 입증됐다. 명망 있는 기업과 공신력 있는 의료기관의 이러한 노력은 홈 헬스케어의 사회적 신뢰도를 확보하는 첫 시도라 하겠다.

고령화사회에서 홈 헬스케어의 미래는 밝다. 인생 이모작 시대를 살고 있는 중장년층은 홈 헬스케어로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림으로써 더 안정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여 병원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홈 헬스케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심지영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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