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철]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 입력 2007년 6월 5일 03시 03분


한국이 장수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많은 이가 나에게 반문한다. “사람 오래 살게 해서 어떻게 하려느냐”는 우려 섞인 질문이다. 나이가 들면 으레 몸이 불편하고 아프다는 고정관념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질병-장애로 지내는 시간 7.7년

그러나 사람이 나이 든다고 모두 다 아픈가? 절대 그렇지 않다. 고령화된 선진국의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질병을 가진 사람보다 건강한 노인의 증가가 훨씬 많다는 것, 고혈압 인지장애 등 생활습관질환 환자의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인구고령화 초기에 우려하는 ‘건강하지 못한 노인’의 증가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비교하기 위한 지표가 바로 건강수명이다. 일반적인 수명과 달리, 질병이나 장애 없이 살 수 있는 생애 기간을 ‘건강수명’이라고 한다. 어떤 지역에서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는 질 높은 삶을 향유하며 능동적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한 생애손실(수명손실) 기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명손실 기간을 최소화하면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가족과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인의 최근 평균수명 급증 현상은 대단히 놀랍다. 1960년에 52.4세, 1975년에 63.8세, 1985년에 68.4세, 1995년에 73.5세. 2005년에는 78.6세에 이르렀고 2020년에는 81.5세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한국은 국제 수준의 장수 국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수명 증가 속도는 평균수명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수명은 75.5세, 건강수명은 67.8세로 수명손실 기간이 7.7년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명손실 기간이 길다는 사실 외에도 문제가 있다. 국내 발표 자료에 의하면 1989년과 1999년 사이 10년 동안 평균수명은 남성이 3.8년, 여성은 3.2년 늘었다. 반면 건강수명은 남성이 1년, 여성은 1.6년 늘어나는 데 불과했다. 건강수명 증가가 평균수명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명이 늘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선진 고령사회와 달리 건강수명의 증가 속도가 평균수명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질병에 따른 비용을 감안해 국민 건강수명이 1년 늘어난 효과를 산출하면 연간 3조4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 국민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이 같아지면 연간 26조2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는 셈이다. 건강수명 증대는 이렇게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한다.

건강수명-평균수명 격차 좁혀야

사람이 살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것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집단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와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고령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국민의 삶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해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최근 국회가 앞장서서 노화과학기술연구촉진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사회 고령화에 대한 불안을 없애고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멋지고 당당하게 늙어 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런 세상에서는 “사람 오래 살아서 뭐 해?”라는 우문(愚問)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상철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