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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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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성형의 기원은 ‘범죄자의 구원’
인류 최초의 코 성형수술 기록은 기원전 800년경 바라문교의 경전인 ‘수슈루타삼히다’에 나온다. 죄를 지어 코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쿠마스라고 알려진 도공들이 코 재건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이후 로마에서는 ‘성형할 부위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를 떼어 이식한다’는 이론으로 코 성형을 시도했다.
현대적 의미의 성형수술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독일에 살던 많은 유대인이 ‘진정한’ 독일인이 되겠다며 유대인 특유의 매부리코를 없애는 수술을 받았다.
20세기에 터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성형수술이 확산된 계기였다. 전쟁으로 외모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재건성형’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항생제의 개발은 성형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 수술 전후 세균의 감염 염려가 줄면서 새로운 성형기술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 이때부터 ‘재건성형’의 단계를 뛰어넘어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미용성형’이 활발해졌다.
○예쁘긴 하지만…
국내에서 코 성형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초반. 초기에는 ‘파라핀’을 이용해 콧대를 높이는 수술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20여년 전부터 실리콘을 주입해 코 전체를 높이는 수술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 가지 보형물로 콧대와 코끝을 함께 높이다 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코는 본래 단단한 뼈와 약한 뼈로 나뉘어 있는데 실리콘 코 성형은 코 전체를 하나의 단단한 물질로 고정시킨 꼴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미적인 효과만 강조하다 보니 코의 지지력이나 환자의 질병 등 기능적인 면을 간과했다. 수술 도중 코가 휘어진 것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코가 휜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성형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의 위험성이 항상 뒤따랐다.
최근 성형의 흐름은 분과 전문의가 수술을 함께 하는 것이다. 눈 성형은 안과에서, 피부성형은 피부과에서 하는 식이다.
코 내부 질환이 전문인 이비인후과 전문의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뷰티’와 ‘헬스’를 두루 고려한 코 성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코 성형에 나선 것은 10여년 전 코가 휘어 있는 ‘코중격 만곡증 코’를 교정하면서부터다. 코중격 만곡증을 치료하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질환 치료뿐 아니라 휘어진 코를 예쁘게 고치기를 원해 미용 수술이 시작됐다.
이후 코 성형 기법의 연구성과가 축적되면서 자가 조직을 코끝 수술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코끝 보형물에 쓰는 자가 조직으로는 ‘귀 연골’과 콧속에 있는 ‘코중격 연골’이 있다.
귀 연골은 위험도가 낮지만 콧속에 있는 코중격 연골은 채취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코가 휘거나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코의 내부구조에 익숙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코중격 연골을 비교적 능숙하게 채취해 성형수술에 나설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코 성형 전문의사 중 상당수가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며 코 성형의 절반 이상이 이비인후과에서 이뤄진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심미안코성형클리닉(korea.nose.co.kr, 02-523-3222) 정동학 원장은 “코를 집에 비유하자면 기존의 성형외과는 지붕은 잘 고쳤지만 기둥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며 “이비인후과와의 협력을 통해 지붕과 기둥이 제대로 된 수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현재는 콧등과 코끝을 분리해 콧등에만 실리콘이나 고어텍스를 사용하고 코끝은 자가 조직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훨씬 자연스러우면서 세밀한 코 성형이 가능해졌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것은 코의 건강 전문가인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아름다움을 다루는 성형외과 전문의의 협진시스템이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동헌종 교수는 “코의 질환 문제와 코중격 연골의 채취 등은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맡는다”며 “이후 보형물을 삽입하고 마지막으로 코 모양을 다듬는 단계에서 성형외과 전문의와 의견을 조율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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