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은 태풍을 주무르는 손”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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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에서 바라본 태풍의 눈. 여름철 한반도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태풍이 남극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로 북상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제공 NASA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태풍의 눈. 여름철 한반도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태풍이 남극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로 북상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제공 NASA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태풍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태풍은 적도 부근 태평양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언제 어떤 규모로 태풍이 닥칠지 모니터링할 때 늘 ‘뜨거운’ 적도를 눈여겨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태풍의 주인은 ‘차가운’ 남극이라고 한다. 또 여름 장마의 상당수가 북극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적도에서 발생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북상하는 태풍의 개수가 남극 기압의 변화에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26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지구물리학회지’에 발표된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극지의 엘니뇨’로 불리는 극 진동 현상이었다. 극 진동은 북극, 남극 등 극지 지역의 기압과 한반도가 속한 중위도 지역의 기압이 서로 시소를 타듯 한쪽이 커지면 한쪽이 작아지는 현상이다. 허 교수는 “연구 결과 극 진동 현상은 여름철 태풍과 장마, 강수량은 물론 겨울철 한파와 꽃샘추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이 일본에 상륙한 태풍 개수를 조사한 결과 매년 2, 3개씩 오던 태풍이 남극 기압이 중위도보다 강해진 1989년에 5개, 1993년에 6개, 2004년에는 무려 10개나 온 것으로 나타났다. 남극 기압이 강해지면 태풍의 개수가 늘어 피해가 그만큼 커진다.

남극 기압은 지구 끝에서 끝을 오가며 한반도 태풍을 좌우한다. 남극 기압이 커지면 호주 남서쪽에 고기압이 발달한다. 적도의 대류활동이 활발해져 태풍이 많이 만들어진다. 태풍 진로도 달라진다. 또 남극 기압이 커지면 일본 남쪽의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된다.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고기압이 커지면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태풍이 한반도 쪽으로 이동한다.

여름철 강수량은 북극 기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번에는 반비례다. 북극 기압이 작아지면 비가 많이 오고 기압이 커지면 비가 적게 온다. 겨울철 한파도 마찬가지다. 북극 기압이 작아지면 한반도에 한파가 자주 온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기압이 더 높은 시베리아로 흘러가 차가운 시베리아고기압이 확장되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기온도 내려간다.

그동안 기후 현상에서 가장 큰 관심은 열대 지방에 몰려 있었다. 적도 부근의 바닷물이 뜨거워지는 엘니뇨에 따라 지구 전체의 기후가 널뛰기를 했던 것이 한 사례다. 그러나 예측이 어려운 한반도 여름 기후가 적도 지역과 함께 극 지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근 ‘100년만의 여름 무더위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 한반도 기후 예측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임스 한센 박사는 2월 올해 여름이 100년 만에 가장 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와 엘니뇨가 기온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승대 기상청 공보관은 “기후학자들은 오히려 올해 엘니뇨가 예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올여름은 예년보다 덥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령 지구 전체는 가장 더운 해가 되더라도 한반도의 여름이 꼭 덥지는 않다는 것이다. 1998년이 세계적으로 가장 더운 해였지만 한반도의 여름은 그다지 덥지 않았다. 한반도 기후는 적도와 극지, 대륙과 해양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극 진동 현상은 태풍과 여름철 강수량의 장기 예보에 활용돼 피해를 줄이는 데 이용될 것”이라며 “한국도 극지 기후 연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용어 설명▽

:엘니뇨: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 또는 ‘사내 아이’라는 뜻. 태평양의 적도 인근 해역의 수온이 상승해 세계 곳곳에 폭풍 홍수 가뭄 등 재난을 몰아오는 이상기후 현상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바닷물 온도가 2∼3도, 심하면 8∼10도까지 올라간다. 평소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던 태평양의 해류가 정반대로 흘러 아메리카 대륙과 부딪치면서 기상이 변을 몰고 온다. 보통 한번 발생하면 12∼18개월간 지속되며 주기는 평균 4∼5년 정도다.

:극 진동 :

남북극 등 극 지역의 기압과 중위도 지역의 기압이 서로 진동하듯 높낮이가 거꾸로 변하는 현상. 1930년대 영국 기상학자 워커 박사가 북극과 유럽 지역에서 처음 발견했으며, 1990년대 후반 들어 북반구 대륙 전체는 물론 남반구에서 같은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동성 고·저기압, 대기운동, 해수면 온도,대륙의 눈 덮임, 미세 먼지, 온실가스 등에 의해 극진동의 크기가 바뀐다. 흔히‘극 지역의 엘니뇨’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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