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명공학의 발전은 신약 개발의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인간의 질병은 대부분 단백질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거나 증가시켜 정상적인 기능으로 바꾸는 것이 약물이다. 지금까지 신약 발굴은 의약품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약효를 검증하는 수 없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질병 단백질의 생김새를 파악해 그 부위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디자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노성구 연구이사는 “전통적 신약 개발 과정이 ‘잔솔밭에서 바늘 찾기’였다면, 미래의 신약 개발은 이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며 “앞으로 디자인 되는 신약은 개발 기간이 크게 줄어들뿐더러 부작용은 적고 효능은 뛰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 정보가 필수적이다. 단백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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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독특한 3차원 구조를 통해 인체의 생명현상을 주관한다. 이때 3차원 구조에 변형이 생기면 질병이 발생하는데, 변형된 부위에 꼭 들어맞는 화합물을 개발하면 이는 곧 새로운 약물의 후보가 된다.
슈퍼컴퓨터와 X-선 결정학 등으로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구조단백질체학(프로테오믹스)이 최근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난치병을 일으키는 질병 단백질의 구조를 확인하고 새로운 약물을 설계하는 방법이 몇 년 내에 보편화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머크사에서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숙주세포로 침투할 때 필요한 프로테이즈라는 효소(단백질)를 표면에 갖고 있다. 머크사는 이 프로테이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해 그 기능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약물을 개발했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기존의 에이즈 치료제와는 개념부터 다른 근본치료제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서 새로운 약물을 디자인하는 ‘가상공간 약물디자인’도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전망이다. 단백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종 정보와 수식을 컴퓨터에 대입해 3D 형상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단백질의 입체영상을 컴퓨터 화면으로 띄울 수 있다. 마우스만 움직이면 단백질 입체영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질병 단백질의 변형 부위를 확대해 관찰함으로써 이 부위에 맞는 화합물을 가상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로봇을 이용해 한번에 수백개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을 검색하는 고효율약효검색(HTS) 장치도 신약 혁명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과기부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 유성은 단장은 “속속 밝혀지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비밀은 신약개발 가능성을 점차 높이고 있다. 정보기술(IT)혁명에 버금가는 신약혁명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우리나라 생명공학 연구결과를 한 곳에 모아 이를 신약개발에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대공 동아사이언스기자 a2g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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