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위염-소화 궤양 주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의 진실

  • 입력 2002년 6월 16일 21시 29분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는 위가 샘창자(십이지장) 연결되는부위인 날문(유문) 살고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는 위가 샘창자(십이지장) 연결되는
부위인 날문(유문) 살고있다
《전 세계 인구 중 절반의 위 속에 살고 있다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P). 만성위염과 소화 궤양의 주 원인이며 HP를 없애면 궤양의 재발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제 학계에서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위암 발생과의 관계, 누구나 균을 없애야 하는 지 등은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태. 얼마전에는 HP가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무작정 없애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일본 쿄토에서는 79개국 7000여명의 의사들이 참가한 제 26차 세계내과학회가 열렸다. 이번 학회의 최대 이슈는 HP에 관한 논란. ‘HP에 관한 의견도출’이라는 심포지엄에 참가한 서울대병원 내과 송인성 교수의 도움말로 ‘HP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HP는 위암을 일으키나?〓199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HP를 1급 암 유발인자로 인정했다. 일본 연구진이 HP를 다람쥐의 일종인 ‘몽골리안 저빌’에 감염시켰더니 5년내 ¼∼⅓에서 위암이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HP가 인간에게서 위암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없다. 수많은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볼 때 HP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에 걸릴 확률이 약 2.2배다. 위암에는 HP외에 유전과 환경적 요인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HP는 위암 발생과 관계는 있으나 어느정도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확대한 모습

▽HP를 없애면 위암이 예방될까?〓답은 ‘두고 봐야 한다’. 위암은 만성위염을 거쳐 발생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중에서도 만성위축 위염이 위암의 전 단계로 인정된다. 만성위축 위염에 걸리면 위 점막의 정상적인 구조물들이 파괴되고 그 자리가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과 유사한 세포들로 바뀐다. 만약 HP를 없앴을 때 이런 현상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위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

여기에 대한 연구결과는 매우 다양해 결론을 내기 힘들지만 HP를 없앤 뒤 관찰 기간이 길수록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대규모 연구가 진행중이므로 더 두고봐야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있다. 아직은 위암 예방을 위해 HP를 일부러 제거할 필요는 없다.

▽HP와 위 림프종〓위암은 HP를 없앤다고 치유되지 않지만 위에 생기는 악성종양 중의 하나인 위 림프종의 일부는 HP박멸로 완치가 가능하다. 단지 이 경우도 위 림프종이 △심한 악성이 아니고 △ B세포 림프종과 T세포 림프종 중 B세포 림프종일 경우 △종양이 위의 표층에만 생겼을 때에만 해당된다.

송 교수에 따르면 위 림프종 환자의 60%에서 암 억제 유전자의 하나인 P16이 변이됐다는 게 밝혀졌는데 HP를 제거하니 변이 유전자의 양이 점차 감소됐다.

▽HP와 역류 식도염〓위 속에 HP가 살면 만성위축 위염이 생겨 위산이 덜 분비되므로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역류 식도염에는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는 꼭 일정치 않아 일반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다는게 이번 학회의 결론. 더구나 한국에서는 역류 식도염을 가진 사람이 서양에 비해 적고 HP를 없앤 사람을 장기간 관찰한 결과 없애지 않은 사람보다 역류 식도염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HP를 꼭 없애야 할 사람〓나라마다 지역마다 HP를 제거해야할 대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소화 궤양이 있는 사람이나 궤양을 앓은 흔적이 있는 사람에게 재발을 막기위해 △조기 위암을 내시경 점막절제술로 치료한 뒤에 HP가 암의 재발가능성을 높이므로 재발을 막기위해 △위 림프종의 치료를 위해 제거한다. 그러나 △소화불량 △위암의 가족력이 있을 때 △장기간 산분비억제제나 진통제를 사용할 때 △위염이 있을 때 등은 HP 제거가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 권장하지 않고 있다.

송인성 교수는 “HP감염여부 검사는 치료대상이 되는 경우에만 해야한다”며 “건강검진을 하다 HP 감염 사실을 알게되더라도 치료 대상이 아니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P)는 위의 날문(파이로리)부위에 사는 나선(헬리코)모양의 균(박터)이다. 79년 호주의 병리학자 로빈 워렌이 발견했고 82년 호주의 미생물학자 배리 마셜이 배양에 성공해 의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전에는 위산으로 덮인 위 속에는 세균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HP의 길이는 2∼7㎛. HP는 ‘우레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 위 점막에 있는 극미량의 요소를 분해해 알칼리성의 암모니아를 만들어 주변을 중화시킨다. 이렇게 해서 위산으로 가득찬 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3, 4개의 편모를 갖고 있어 위벽의 점액 단백질인 ‘뮤신층’을 자유롭게 지나다니며 구멍을 내기도 한다.

HP는 감염자가 토한 음식이나 대변에 오염된 물, HP에 오염된 식품 등을 통해 전염되며 입을 통해서도 감염되는데 술잔을 돌리거나 수저를 같이 사용할 경우, 키스를 할 때 감염된다. 내시경을 통한 감염도 가능하다.

위생상태가 양호한 선진국은 어린이들의 감염률이 낮고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데 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는 어린이 나 성인의 감염률이 모두 높다.

서울대 의대 송인성 교수(내과)는 “외국의 HP 재발률이 1%에 불과한데 반해 한국은 12∼15%에 이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찌개 하나에 모두가 숟가락을 넣고 먹는 식생활 문화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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