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노벨화학상 공적…병주고 약주는 이성질체 해결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9시 37분


쌍둥이가 양쪽 길을 지키고 있는데 한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한사람은 악당이다. 누구를 찾아가야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을까.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3명의 화학자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이런 수수께끼를 해결한 공로로 영예를 차지했다.

수수께끼의 주인공은 바로 광학이성질체(光學異性質體). 오른손과 왼손처럼 똑같은 입체구조를 갖고 있지만 오른손에 왼손 장갑을 낄 수 없는 것처럼 결코 겹쳐질 수 없는 물질이다. 편광을 비출 때 물질을 통과한 빛의 회전방향이 반대여서 이같은 이름을 얻었다. 고교 교과서에서는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소개되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키랄 물질이라고 부른다. 키랄은 그리스어로 손을 의미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대부분 광학이성질체의 어느 한 형태만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생체 내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왼쪽으로 빛을 회전시키는 형태며 탄수화물은 반대로 오른쪽이다. 반면 자연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게 되면 왼쪽형, 오른쪽형이 절반씩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 인공 합성물질이 생체 내에서 절반만 원하는 기능을 보이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감미료의 일종인 아스파탐의 경우 한쪽 광학이성질체는 단맛을 나타내지만 다른 쪽은 쓴맛을 나타낸다. 아로마의 일종인 리모넨의 경우 각각 레몬향과 오렌지향을 낸다.

생체 반응의 대부분은 단백질 효소에 의해 일어난다. 효소는 3차원 구조를 갖고 있어 마치 레고 블록을 끼우듯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받아들인다. 다른 이성질체는 그냥 몸밖으로 배출된다. 간혹 다른 효소에 결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때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광학이성질체에는 심지어 약과 독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처음 호흡기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약효가 좋아 임신부의 심한 입덧을 완화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됐지만 유럽과 캐나다에서 수천명의 기형아를 낳는 끔찍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한국화학연구원 박노상 박사는 “부작용이 없더라도 약효를 가진 물질만으로 약을 만들면 1알이면 될 것을 2알을 먹게 되는 셈이어서 일종의 약물남용”이라면서 “절반이 불순물인 약을 생각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92년부터 아예 약효를 가진 한가지 물질에만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다.

그러나 광학이성질체는 구성 원자와 결합 순서, 방법이 모두 같기 때문에 녹는점, 끓는점, 용해도 등 물리화학적 성질이 모두 같다. 그래서 쉽게 분리할 수도 없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3명의 화학자는 아예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

미국 몬산토사 연구원 출신의 윌리엄 S. 놀즈 박사(84)와 일본 나고야대학 노요리 료지(野依良治·63)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촉매를 이용해 2차원 평면 구조를 가진 분자의 탄소 원자 두 개 사이에 수소 두 개를 끼워 넣은 것이다. 수소가 들어가면 이 물질은 한쪽 방향으로 뒤틀렸다. 즉 한쪽 광학이성질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K. 배리 샤플리스 박사(60)는 탄소 결합 사이에 산소를 끼워 넣는 산화반응 촉매를 개발했다. 이화여대 고수영(화학과) 교수는 “산소는 다른 물질과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일단 산소를 끼워 넣어 하나의 이성질체를 만든 뒤 다른 이성질체들을 계속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샤플리스 박사 연구실에서 박사학위 연구를 했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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