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화폐 "내년에 보자"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30분


10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연면적 3만6000평 규모의 코엑스몰. 이곳에 입주한 1500여개의 점포 가운데 700여개 가게에는 전자화폐 ‘몬덱스’를 취급한다는 가맹점 표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전자화폐를 재충전하는 입출입기계를 비롯해 전자화폐용 공중전화기와 음료수 자동판매기까지 곳곳에 설치돼 있어 전자화폐가 상당히 널리 유통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마스터카드 계열의 전자화폐회사 몬덱스코리아가 국내 처음으로 전자화폐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지 7개월째. 6월부터 서울의 코엑스몰 및 제주도에서 소비자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지만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특히 코엑스몰의 경우 대당 가격이 150만원에 이르는 신용카드 전자화폐 겸용 단말기를 시스템서비스 제공자(VAN사업자)와 비용을 공동 부담해 공짜로 가맹점에 설치해준 덕분에 700여개의 가맹점을 확보했지만 카드 발급에는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한 카드 수는 제주도까지 포함해 모두 3000여장. 당초 목표가 20만장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올해 7월말부터 서울 역삼동에서 시범서비스에 들어간 K캐시도 사정은 마찬가지. 금융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가 추진하고 18개 은행과 7개 카드사가 참여한 한국형 전자화폐로 큰 관심을 모은 이 전자화폐는 실적이 부진해 당초 10월말 전국 확대 계획을 내년 이후로 미뤄야 했다. 목표 2만4000장에 크게 못 미치는 4000장 발급에 그친 점과 관련해 한 관계자는 “일부 참여사들의 소극적인 자세와 준비 소홀로 활성화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올해 중반 결제방식의 혁명을 일으킬 ‘꿈의 화폐’라는 첨단 이미지로 화려한 각광을 받았던 전자화폐. 2004년경 전체 화폐의 20%가 전자화폐로 교체된다는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인터넷인구가 2000만명에 육박하고 초고속인터넷망이 급속도로 깔리는 등 디지털혁명에 ‘유난히’ 친숙한 우리나라에서조차도 전자화폐는 아직 발붙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 속단은 이르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 특히 내년에는 기존의 몬덱스코리아와 K캐시 외에도 비자코리아가 주도하는 V캐시, 국민 LG 삼성 등 카드사가 참여하는 A캐시 등 모두 4개의 대형 전자화폐 컨소시엄이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을 펼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가장 먼저 상용화에 들어선 몬덱스코리아는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에만 100만장을 보급한다는 계획. 또한 내년말까지 500만장을 장담하고 있다. 몬덱스코리아 이연호 전무는 “아직까지 소비자층의 인식이 부족한 건 사실이나 10, 20대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무선통신 패스트푸드점 인터넷쇼핑몰 PC방 등의 사업자와 협력해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년 3월 시범서비스에 이어 6월부터 상용서비스에 들어가는 V캐시 역시 온―오프라인에 강력한 마케팅망을 구축한 삼성물산 SK텔레콤 롯데 등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비자코리아 정도영 이사는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금융권이 독자 추진한 전자화폐 서비스는 비용부담 때문에 거의 실패했다”면서 “전략적 파트너와의 공동 비용부담을 통해 내년 중 100만장은 족히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캐시와 A캐시는 특히 교통카드 분야에서 경쟁할 전망. K캐시는 선점업체가 장악한 서울과 부산을 피해 춘천 대전 전주 등 지방 대도시를 집중 공략할 계획이며 A캐시는 내년 4월부터 서울시내 마을버스와 경기도 버스를 대상으로 전자화폐 상용서비스에 들어간다. 삼성카드 박성찬 과장은 “전자화폐는 기본적으로 선불카드이기 때문에 편리성을 강조해야 쉽게 보급할 수 있다”면서 “교통카드를 바탕으로 일반 상거래까지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