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대차]"엄마, 컴퓨터 만지면 고장나요"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진컴퓨터학원. 주부인터넷교실에 참가하기 위해 설거지를 막 끝낸 듯한 주부들이 수업에 늦을새라 뛰어들어온다.

대개 30대 후반∼40대 초반인 주부들이 왜 숨을 헐떡이며 학원으로 달려와 인터넷을 배울까. 답변이 쏟아졌다. “애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요. 클릭이 뭔지, 제어판이 뭔지도 모르니 애들이 눈치를 주잖아요.”, “집에 있는 컴퓨터를 켜려고 해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해요. 엄마가 만지면 고장난다고요….”

세달째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김란씨(51·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집에서 컴퓨터 모르는 저는 외로워요. 남편은 사이버 주식거래, 교사인 딸은 교재로 쓸 자료를 위해 문서작성, 대학생 아들은 인터넷에 몰두해요. 도대체 대화가 안돼요”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 그러나 80대의 기독교계 지도급 인사는 최근 “옛날에는 신문 첫면부터 끝면까지 모르는 게 없었는데 요즘은 신문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내용이 적지않아. 인터넷을 쓰고 못 쓰고의 차이가 이런 현상을 낳은 것 같아”라고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이렇듯 인터넷이 자신을 사회의 변방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느끼는 계층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 의해 소외감을 느끼는 계층은 고령층과 저학력층에 많이 몰려 있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인터넷이 세대간 격차를 더욱 벌려놓아 사회통합에 큰 장애요인”이라고 우려한다.

정보통신부가 펴낸 ‘2000 한국인터넷백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한국의 40,50대 인구중 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12.81%와 2.92%로 20대의 41.9%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학력별로도 대졸이상은 37.1%가 인터넷을 쓰고 있지만 고졸자는 9.3%, 중졸이하는 0.5%만이 인터넷을 접하고 있다.

니콜러스 네그로폰테 미 MIT대 교수도 최근 방한시 강연회에서 “디지털시대에 세계의 35∼55세 사람들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들은 아날로그세대이면서 20대의 디지털세대를 이끌고 의사결정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디지털시대의 세대간 갈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고령층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도식적으로’ 배운다고 문제가 해결될수 있을까.

유영만 교수(안동대 교육공학과)는 “고령층은 디지털문화를 배워도 아날로그식 정보 가공법으로 디지털 정보를 이해한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디지털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정보체득법을 익히지 않는 한 힘들다”고 지적했다. 유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전국의 많은 PC방을 지역주민들이 평생교육받을 수 있는 장으로 제도화해 국민이 디지털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도 세대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윤영민 교수(한양대 정보사회학과)는 “기존 지식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를 가져올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지식과 기술을 인지하고 익히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고령자라도 디지털시대의 대열에서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희망은 있다. 컴퓨터학원에서 만난 김호순씨(69·여·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4월부터 6개월간의 컴퓨터 익히기 대장정에 돌입했어요. 컴퓨터를 배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직은 서툴지만 문서를 내 손으로 작성해 손자들에게 편지도 써요. 이젠 온라인 게임도 함께 하려고 해요”라며 활짝 웃었다.

<김호성기자> 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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