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커뮤니케이션 직책파괴…"벤처인 호칭은 벤처답게"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벤처는 벤처다운 호칭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인터넷 포털서비스 벤처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사장 이재웅)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조은형씨(30·여)는 지난달말부터 새로운 명함을 갖고 다닌다.

예전 직책은 ‘홍보담당 선임’. 홍보에 관한 한 모든 사항을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고 책임자이지만 선임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적지 않은 곤란을 경험했다고 그는 토로한다.

“명함을 주면 홍보과장이나 홍보부장은 없냐며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그러나 새 명함에 찍힌 직능 이름은 ‘PR 플래너.’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있지만 직책 때문에 얕잡아보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는 현재 형식에 얽매인 직책제도를 파괴하자는 ‘소리 없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주임 선임 과장 부장 대표이사 등 상하관계를 표시하는 직책제를 지난달말부터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직능형 호칭을 도입했다.

95년 창업 때부터 사용해온 직책제의 포기는 이사장 혼자만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다. 90명의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 전통적인 직책제는 ‘벤처답지 못한 제도’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직책이 사라지면서 팀장 사장 등의 직능형 이름들이 등장했다. 직능형 이름이 없는 나머지 직원들은 ‘씨’ ‘님’ ‘선배’ 등의 호칭으로 서로를 불러주고 있다.

가급적 상대가 희망하는 대로 불러주고 있어 이로 인한 갈등은 적은 편. 그러나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초반의 말단 직원이 40줄에 들어선 고참 직원에게 ‘∼씨’라고 부르는 모습에는 아직 익숙지 않다고.

이러한 다음의 직책파괴 실험은 기득권층에 속하는 최고 연장자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훨씬 손쉽게 도입됐다.

올해 32세의 이사장을 도와 다음을 이끌어가는 이명환 부사장의 나이는 45세. 90명의 전체 직원 중 40대는 그 자신과 부장 한명뿐이고 나머지 88명은 20∼30대의 젊은이들이라 도전적인 벤처정신이 담긴 호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기껏해야 수십명에 불과한 조그만 회사에서 20대 부장 이사가 적지 않다는 것은 국내 정서상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외국기업은 형식을 따지기 좋아하는 국내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 없던 직책을 만들기도 하지만 벤처가 대기업의 직책제를 그대로 쫓아가는 것은 벤처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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