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따뜻한 겨울 생태계 변화 몸살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한반도의 겨울철 기온이 해마다 상승하면서 국내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은 87년부터 98년까지 12년간의 겨울 기온과 과거의 기온 비교를 토대로 맥주보리 쌀보리 겉보리 등 보리 3종의 재배한계선을 지난해말 북쪽으로 상향 조정했다.

▼맥주보리 강릉서도 재배▼

맥주보리의 경우 과거엔 목포-진주-영덕을 잇는 한계선 이남에서만 재배가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기온상승으로 광주 대구 강릉 지역에서도 재배할 수 있게 됐다. 맥주보리는 겨울 평균기온이 0도, 쌀보리는 영하 3도, 겉보리는 영하 4도가 각각 넘는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농업과학기술원 윤성호 환경생태과장은 “87년 이후 혹한기 기온이 과거보다 평균 1.5∼2.5도 가량 올라갔다”며 “보리 이외의 다른 겨울 작물 역시 조만간 재배한계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업연구원 임종환 연구사는 “아열대 식물인 동백나무의 한계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징후를 보이는가 하면 강원 계방산 지역의 분비나무 잎이 피어나는 시기가 빨라지는 등 이상고온으로 수목생장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관측됐다”고 말했다.

이상 난동(暖冬)으로 인한 혼란은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계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충남 서산의 천수만과 강원 고성의 화진포, 인천 강화 등 전국 곳곳에서는 물닭, 마도요 등 여름철새들이 호주 인도네시아 등 남쪽나라로 떠나지 않고 집단으로 겨울을 나는 모습이 쉽게 목격되고 있다.

경희대 윤무부교수(조류학)는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텃새로 변하는 여름철새가 하나 둘씩 나타나더니 올해는 왜가리 중대백로 도요 등 12∼13종의 철새가 한반도에서 집단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고 밝혔다.

▼여름철새 13種 겨울나기▼

기상청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의 서울지역 겨울철(12∼2월) 최저기온 평균은 영하 3.7도로 1910년부터 1919년까지의 최저기온 평균(영하 7.8도)보다 4.1도나 높아졌다. 같은 기간의 겨울철 최고기온 평균 역시 1.9도에서 4.2도로 2.3도나 올랐다.

서울지역의 겨울철 기온 지표 가운데 하나인 한강 결빙일 역시 점차 늦어지고 있다. 1906년부터 80년까지 12월에 한강이 얼지 않았던 해는 20번에 불과했지만 8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12월에 한강이 결빙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에 따라 서울의 기후대가 이미 아한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원대 한중 대기과학연구센터 정용승교수는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 환경포럼에서 “90년대 들어 아열대 구분점인 ‘겨울(12∼3월) 평균기온 영하 3도’의 등온선이 서울 이북쪽으로 북상했다”고 보고했다.

난동 현상이 십수년째 계속되면서 서민들의 겨울철 풍속도도 바뀌고 있다.

한겨울에도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아 실외 스케이트장의 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게 됐고 겨울의 대표적인 스포츠는 어느덧 스케이트에서 스키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귀마개와 털모자 등 방한 장비를 갖추고 얼음판을 지치던 어린이들의 모습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김장김치를 신선하게 보관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친척이나 이웃들과 함께 김장날을 정해 함께 김장을 담그는 풍경도 이제는 흔치 않다.

기상청 류상범 공보관은 “19세기 후반이래 지구 평균기온이 0.3∼0.6도 정도 상승한데 비해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4도 가량 상승, 온난화 현상이 비교적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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