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AI-트랜스' '오란디프' , 디지털 人文學 길닦는다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디지털시대 지식정보사회에서 경쟁력의 핵심은 인문학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벤처기업을 세우고 전면에 나섰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원장 윤사순교수) 기계번역연구단이 1월초에 세운 ‘AI-트랜스(Al-Trans)’와 서울대 철학과 김영정교수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작년 12월 법인 등록한 ‘오란디프(Orandif)’.》

대학가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끊임없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들 벤처기업을 만든 두 연구집단은 인문학은 순수학문이어야 한다는 기존 학계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AI-트랜스’는 고려대 김흥규 홍종선 최호철, 한성대 고창수교수 등이 대학원생들과 함께 작업을 해 오던 기계번역연구단이 ‘주식회사 프로랭스’(대표 권태근)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회사로 외국어 번역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우선 2년 안에 영한번역프로그램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다국어간의 번역프로그램 개발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개발 중인 번역프로그램이 ‘자질연산문법(Feature Computation Grammer)’이라는 이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속도나 정확성 면에서 기존 번역프로그램에 비해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홍교수는 “기존 번역프로그램들은 공학도들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에 제품을 일찍 개발할 수 있었지만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그 내용을 채울 인문학의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란디프’를 세운 김교수는 논리학과 게임, 교육과 놀이를 접목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education+entertainment)’ 개념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김교수는 시험프로그램도 만들어 보고 사업 타당성도 조사한 뒤 자금을 모아 작년 12월 벤처기업을 세웠다.

사업의 목적을 돈벌이 보다 인문학의 학문후속세대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에 두는 만큼 출자자도 철학 미학 등 관련학자들에 한정했다. 7000만원으로 벤처법인을 세운 후 인터넷 사업의 병행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곧 7000만원을 증자를 할 예정이다.

2월 안에 대학생 논리학 교육용 프로그램을 출시해 봄학기부터 각 대학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다음에는 초중고생을 위한 논리교육프로그램, 그리고 게임을 통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외국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여러 사람이 투자를 제안하고 있지만 김교수는 사실 연구자로 남고 싶다로 말한다.

“인문학은 인문학 자체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인문학은 돈벌이하는 신지식인이나 지식정보화 이전에 그 내용을 연구하는 기반입니다. 제대로 축적된 인문학이 필요한 부문에 응용될 때 얼마나 많은 활용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부닥치는 컴퓨터의 자판배열과 문자코드의 제정, 교통제어시스템, 기업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 M & A, 영어교육프로그램, 선거법 개정 등 모든 현실적 문제들의 바탕에는 관련 당사자들의 행동양식과 심리 및 문화적 성향, 가치관, 언어구조 등 인문학의 연구성과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고창수교수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문학의 기반이 없으면 모든 이론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바로 철저한 문화적 종속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작업을 통해 인문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의 필요성을 일깨우려 한다. 인문학의 열세를 극복하는 데는 수십년 또는 수백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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