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人 휴대전화 비밀번호 불법복제]'도둑 통화'판친다

  • 입력 1999년 10월 5일 19시 37분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헥사코드(ESN·휴대전화별 비밀번호격)를 알아내 중고 단말기에 복제,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건이 성행하고 있다. 불법복제는 전문범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동통신사의 일부 악덕 대리점에서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불법복제된 단말기는 주로 공단이 밀집한 지역의 국내 체류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넘겨져 국제전화를 거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소유자는 엄청난 전화요금을 물거나 불법복제됐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

▽불법 복제 실태〓신모씨(54·여·서울 강동구 천호동)는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18일부터 26일까지 9일간 쿠웨이트 파키스탄에 국제전화를 무려 600통화나 걸어 475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신씨는 단말기를 분실한 적도 없고 단지 8월과 9월 두차례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받았을 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서울 청계천이나 용산상가에는 휴대전화의 헥사코드를 수초 내에 알아낼 수 있는 장비가 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누구나 이 기계를 구입해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에 연결하면 손쉽게 헥사코드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헥사코드 번호를 알아내 다른 단말기에 입력시켜주는데 3만원 정도를 받고 있으며 일부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조차 이같은 불법 복제가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헥사코드 유출이 가능한 것은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헥사코드를 단순히 일련번호식으로 부여하고 있어 코드부여 체계만 알아내면 손쉽게 복제할 수 있기 때문.

▽업체당 월평균 100여건〓신세기통신은 추석연휴기간에만 12건, 5000여만원의 불법복제 사실을 적발했다. SK텔레콤도 올해에만 24건의 불법 복제 피해를 중앙전파관리소에 고발했다.

업체들은 구체적인 피해 액수와 사례를 밝히기를 꺼리고 있으나 업체당 월평균 100여건이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단말기 가격이 비쌌던 과거에는 구입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가입자의 묵인하에 불법 복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불법복제가 성행하는 추세. 분실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를 고객들로부터 구입하는 대리점도 불법복제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련 법규 미비와 소비자 피해〓피해를 본 소비자가 통화요금이 부당하게 부과됐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통화비를 물어야한다.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통화내역을 확인해야하는 등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요금은 먼저 내고 피해가 입증될 경우 반환받지만 대개의 경우 본인이 불법복제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처럼 휴대전화의 불법복제가 성행하고 있는데도 현행 법규에는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마땅한 근거가 없으며 정보통신부나 중앙전파관리소는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 관계자는 “휴대전화가 불법복제되면 일단 통화 음질이 떨어진다”며 “통화료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요금 내용을 확인하라”고 권유한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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