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리포트 11]佛 소피앙티폴리스

  • 입력 1998년 3월 25일 19시 59분


프랑스 남부의 코트다쥐르(영어로는 리비에라)지방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온화한 기후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모네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같은 화가와 발자크 모파상 톨스토이 등의 소설가들은 이곳에 머물며 작품을 구상했다.

오늘날 코트다쥐르에는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업체가 모여있다. 핵심이 되는 곳은 28년전 5천7백에이커(2천3백만㎡)의 캠퍼스 위에 세워진 유럽 최초의 대규모 연구단지인 소피앙티폴리스다.

이 곳에는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T&T패러다인 디지털이큅먼트 프랑스텔레콤 등 40여개 회사의 6천5백여 연구원과 기술자들이 모여 실리콘밸리를 본뜬 ‘텔레콤밸리’라는 정보통신협회를 구성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엘리트들은 소피앙티폴리스에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5월이면 세계적인 스타들이 플래시 세례를 받는 영화의 도시 칸이 불과 15㎞, 유럽 각국에서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세계적인 휴양지 니스가 22㎞ 거리에 있어 삶의 질이 세계 어느 곳보다 높다.

게다가 니스에는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국제공항이 있어 각국에 흩어져 있는 본사와 왕래하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다.

소피앙티폴리스에 모인 정예 연구원들은 각 사의 핵심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컴팩과 합병결정을 내린 디지털이큅먼트사의 현지연구소는 ‘밀리센트’라는 마이크로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개발하고 사내에서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다.

마이크로전자상거래란 소액의 돈이 오가는 전자상거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밀리센트’는 10달러 이하의 전자화폐를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담아놓고 인터넷을 통해 맘대로 상거래를 할 수 있게 한다.

소액에 국한하는 것은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완벽한 보안체제를 구축하기 힘들고 하드디스크가 깨질 위험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터넷신문의 기사 한건, 파일에 담긴 노래 한 곡도 마이크로전자상거래의 훌륭한 품목이 된다. 인터넷신문에서 기사 한건을 보는데 5∼10센트씩 매기고 원하는 기사를 보도록 하는 방식으로만 해도 시장전망은 밝다는 것이다.

디지털이큅먼트사의 다니엘 스랭박사는 “마이크로전자상거래 규모는 2000년에 60억달러, 2005년에 5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다쥐르를 이끄는 것은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국제적인 연구풍토를 바탕으로 싹튼 벤처기업이 유럽을 상대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LCI비전사의 조셉 스파타리는 IBM에서 21년을 근무하다 나와 원격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시스템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병원에서 2천㎞ 북쪽에 사는 환자의 원격진료에 이용되는 등 북유럽 50여개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독일의 은행에서는 원격화상회의 시스템이 핵심 고객에게 금융상황의 변동에 따라 그때 그때 재테크를 상담해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시스템을 좀 더 발전시키면 길거리에 설치된 키오스크 형태의 무인은행이 된다.

소피앙티폴리스는 유럽의 중심 연구단지답게 유럽 각국의 정보통신 표준을 정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정보통신표준연구소(ETSI)는 모든 것이 제각각인 유럽의 여러 나라에 통일된 정보통신 규격을 만들기 위해 88년에 설립됐다.

단일유럽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동맥인 네트워크의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서쪽으로는 포르투갈에서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관련 업체와 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십자군’을 결성했다.

ETSI는 이미 종합정보통신망(ISDN) 이동전화 위성통신 등의 분야에서 유럽표준을 이끌어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소비자는 제품과 서비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관련제품 생산업체와 서비스제공업체는 보다 확대된 시장을 갖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유럽 인터넷전화규격을 만들기 위해 각국의 전화사업자와 인터넷서비스업체(ISP) 사이에 ‘타이폰(TIP

HON)’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세계에 통일된 규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브리짓 코스그레이브 부소장은 “어느 나라나 전화사업자와 인터넷사업자는 서로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러 차례 포럼을 통해 마음을 열고 합의에 도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피앙티폴리스(프랑스)〓김홍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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