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생선박람회」화제…은어(魚)등 신종어 총집합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04분


삼성전자 L이사의 경험. 하루는 집에 들어온 대학 1년생 딸아이가 화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폭탄을 만나 완전 꽝이야』 걱정이 된 그가 물었다. 『어디 다쳤니』 딸아이 왈, 『미팅에서 못 생긴 애랑 파트너가 되었거든요』 L이사는 나중에 「폭탄」이 못 생긴 애를 뜻하는 은어라는 사실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이 필요할 지경에 이른 10대들의 은어 속어 삐삐언어 등 각종 신종어(語)를 모아놓은 「생선(魚·어)박람회」가 PC통신상에서 열리고 있다. 「야자시간에 담탱이 몰래 압구리에서 따순이 빼고 노는게 짱이야」. 누군가 10대들이 사용하는 이 문장을 제대로 옮길 수 있다면 일단 신세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장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담임선생님 몰래 압구정동에서 재미없는(따돌림 받는) 애를 빼고 노는 게 제일 재밌어」라는 뜻. 이 문장에서 기성세대들이 알만한 것은 「몰래」 「빼고」 「노는 게」의 3단어 정도.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이들이 자주 쓰는 「당근」은 당연하다는 뜻의 준말이다. 「범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 「날범생」은 공부도 잘하고 잘노는 학생, 「쌩까다」는 거짓말치다 등등…. 학생들이 사용하는 욕이나 속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방귀」는 상대하기 싫으니 방에서 귀나 파라는 뜻이고 「짜져」는 보기 싫으니까 사라지라는 뜻이다. 생소하기가 거의 외국어 수준이다. 사용하는 어법도 파격적이다. 「아주」나 「많이」라는 부사 대신에 「심하게」라는 부사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두 학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내가 그 애를 심하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니』 『그럼 전화를 심하게 해봐. 뭔가 수가 생길 거야』 국어선생님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불호령이 내릴 것은 뻔한 일이다. 10대들 사이에 삐삐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그들만의 삐삐언어도 신조어로 등장하고 있다. 설명을 들어도 웬만해서는 알 수 없을 정도다. 「177155400」는 「나는 당신이 그리워(I miss you)의 약자로 「77」이 「m」을 대신하고 「55」가 「ss」를 대신한다. 삐삐언어의 백미는 「1212」. 「홀(1)짝(2)홀짝」을 뜻하는 숫자로 술 마시러 가자는 얘기다. 이밖에 「5454」는 「오빠 사랑해」라는 뜻이며 「042」는 영원히 사랑한다는 뜻으로 수 많은 삐삐언어들이 10대들 사이에서 암호처럼 통용되고 있다. 10대들 스스로는 은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습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이 지난달 발표한 「청소년 언어세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은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52.6%가 습관적인 것을 들었고 말이 잘 통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18.5%, 비밀유지를 위해서가 8.0%를 차지했다. 은광여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은어를 모르는 친구들은 따돌림을 당하기 쉽고 조금 바보 취급을 당한다』며 『꼭 또래에 끼이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배어있는 것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생선박람회에 올라온 수 많은 글 중에는 10대들의 은어문화를 꼬집고 반성하는 글도 꽤 올라와 눈길을 끈다. 「여기에 올라온 생선들은 많이 썩었습니다. 은어는 재밌고 이유타당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은어문화가 이것밖에 안된다면 문제가 되겠죠」. 〈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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