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톡톡]회비 몇푼 없어 노인정에도 못가고 종일 나홀로… 외로움 너무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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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여서 나랏돈 타내는 사람 많은데 딸 月 100만원 번다고 지원금 싹둑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올 초 부산에서 혼자 살던 60대 여성이 숨진 지 5년 만에 자신의 집에서 발견되는 등 독거노인 고독사가 늘고 있습니다. ‘고독사’의 정의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아직 정부 차원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2013년 기준 125만 명이 넘습니다. 이 수치는 2035년에는 3배가량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독거노인들에 대한 예방 및 대비책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규모 세계 15위(국내총생산 1조1295억 달러·자료 한국은행)인 대한민국. 진정으로 복지가 필요한 분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목지선(성신여대 영문과 졸), 이병철 동아일보 인턴기자(서강대 신방과 4년 재학)가 독거노인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주택가 노원구 상계동, 종로구 돈의동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독거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돈 버는 것보다 기초생활수급 받는 게 낫지”

―우리 딸이 마트에서 100만 원 남짓 벌어요. 그런데 딸이 돈을 벌다 보니 내 돈(기초생활수급액)이 적게 나와요. 30만 원 정도 나오던 게 13만 원밖에 안 나와요. 내가 혼자 이렇게 사는 게 뻔한데….(64·여)

―솔직히 집이 몇 채씩 되는데 연금 타 먹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게 잘못된 거야.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못 타 먹고. 이게 중요한 거야. 필요한 사람한테 돈이 가야지.(71·여)

―하루 1만∼2만 원이라도 벌면 좋은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버는 게 있으면 또 수급이 떨어져. 어떻게 해서든 귀에 들어간다고. “기초생활수급을 하실래요? 공공근로를 하실래요?” 묻지. 그런데 수급이 낫지. 병원도 공짜고…, 노인네들 노상 아파서 약값이다 뭐다 나가는데 어떻게 공공근로를 해… 수급이 끊기는데.(71·여)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를 잘해 줬으면 싶어요. 멀쩡히 돈 많은 노인네들이 돈을 받더라고. 정작 받아야 될 노인들이 돈을 못 받는다니까.(74·남)

―노인네들이 죽어도 방치되다 나중에 발견된다는 뉴스가 많은데, 왜 그러겠어요. 요새는 서로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요. 옛날엔 통반장이 숟가락 몇 개까지도 다 알았는데 요샌 통반장이 사실 이름뿐이잖아요.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만 잘해도 노인 고독사 막을 수 있어요. “아, 이 노인이 주민등록상으론 자식들과 함께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이렇게 알아야 노인들 죽음도 막고, 보조금도 제대로 잘 줄 수 있는 거죠.(67·남)

―나는 수급자인데, 우리 애들 월급이 올랐다고 수급비용이 깎였어. 깎여서 이제 31만 원이야. 장애연금, 노인연금까지 해서 정부에서 전부 40만 원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 점심은 복지관에서 먹고. 병원비가 많이 나가는데 한 달에 네 번 넘게 가면 그때부터는 보조비가 없어. 그래도 영구임대아파트를 줘서 난 그런대로 살아.(70·여)

“엉뚱한 놈들이 수급받더라”

―90살 먹은 할아버지가 있는데 아내가 연탄가스에 중독됐대. 병 수발을 하다가 몇 년 후 아들도 간암에 걸려버렸어. 그래서 시내에 살다가 살림을 줄이고 줄여 당고개 근처 판잣집까지 들어왔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수급자가 아니라서 쌀을 받을 수가 없어. 가끔 새파랗게 젊은 50대가 수급자라고 하면서 뭐 받아 가는 모습을 보면 아주 화가 나.(75·여)

―50년 된 집 한칸 하나 있다고 보조금을 하나도 안 줘. 차라리 집 팔아서 보조금 받고 싶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서 집을 팔 수도 없고…. 그게 아니라도 이런 낡아 빠진 집을 누가 사겠어. 오히려 월세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인들은 보조를 받으니까 나보다 더 낫지.(75·남)

―속여서 보조금을 타 먹는 사람들도 많아.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 들으려고 해 봤자 못 들어. 돈 잘 버는 자식들한테서 도움을 못 받아서 가난한 건데,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하겠어. 답답한 노인들이 많지. 국가유공자였는데 무식해서 등록을 못해 가지고 보조금도 하나도 못 받고 죽은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걸 생각하면 속이 터져.(78·여)

―기초생활수급비랑 그런 거 다 해서 40만 원씩 받고 있어요. 병원 가면 돈 안 내도 되고. 셋방살이 하고 있고, 다른 소득은 없고 가끔 파지를 줍습니다. 밥은 서울역 쪽 무료급식소에 가서 먹어요. 이번에 공약이 바뀐 거에 대해서는, 사정이 어려운데 무조건 달라고 할 수는 없죠. 근데 노령연금은 조금 더 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국민연금은 내가 부은 건데 수급비를 줄 때 왜 그만큼 국민연금에서 공제하는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67·남)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재산도 많은데 속인대. 수급자 되려면 생활이 최하위급이어야 하는 것 아냐? 재산도 다 은닉하고…. 돈은 버는데 정식 직장이 아닌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받는 거지. 대리운전 같은 건 티가 안 나. 자기 집도 가지고 있으면서 아들 이름으로 명의를 바꿔 놓고. 잘 파헤쳐지지가 않는 것 같아.(77·여)

―보조금이 깎였어. 사위 월급이 조금 올랐다고 깎인 거야. 사위는 자기 엄마 아빠한테 용돈 주겠지 나한테 주겠어? 기초노령연금 9만6800원 나오잖아. 그것만 받아. 그걸로 세금 내고 사는 거야. 복지관에서 밑반찬 갖다 주고…. 하는 거 없이 그냥 맨날 여기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연골이 닳아서 조금만 걸어도 아파.(73·남)

―뉴스 보면 외제차에 수십평대 강남 아파트에서 살면서 세금은 한 푼도 안 내는 사람들 많지? 왜 그런 사람들한테 세금 악착같이 받아내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동네서 몇십만 원 소일거리만 해도 귀신같이 알아내던데.(69·여)

―난 영세민이고 나이 많은 딸이 하나 있는데 따로 살아. 지금은 전세 1000만 원에 월 40만 원 내는 집에 살고 있지. 겨울엔 기름값이 비싸서 한 달에 29만 원 정도 들어. 그러면 거기에 남은 돈에서 한 달에 10kg 정도 쌀 사고 김치하고 밑반찬 몇 개로 해서 밥 먹고 사는 거야. 혈압이 높은데, 그래도 병원은 공짜야. 오래 살면 안 좋아. 옷 살 돈은 없어. 주워 입지.(91·여)

―노후 준비 같은 건 생각도 못 해. 나는 수급자도 아니고, 한 달에 며느리가 주는 용돈 10만 원으로 며느리 도시락까지 싸야 해. 나 같은 사람보다는 오히려 수급자가 더 잘살거야. 수입이 계속 나오잖아.(68·여)

소일거리라도 있었으면…

―많은 돈이 아니더라도 노년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해. 장애가 있다 보니 파지라도 줍고 싶어도 그러기가 힘들어. 파지라도 줍는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노인들에게도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나처럼 장애가 있는 노인들한테는 더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더 힘들잖아. 똑같은 노인이어도….(66·남)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그나마 일 나가는 게 가장 즐거워. 집에서는 벙어리야. 집에서는 나하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제야 깨달아.(83·여)

―그냥, 뭐라도 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집에만 있는건 지루하고 외롭고, 바깥에 나가면 한푼 두푼 돈이 나가고, 작은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덜 외로울 텐데….(72·남)

―서울 서초구 세곡동에 컨테이너 박스촌이 있어요. 거기서 살았는데 언젠가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여기저기 남의 집에서 자고 다녔어요. 그런데 눈치도 보이고….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진짜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나요, 솔직하게. 우리가 원하는 건, 별다른 게 없어요.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그게 다예요. 일단은 우리 노인들 살 곳, 먹을 것만 잘 챙겨 줬으면 좋겠어요.(71·여)

―자식 없이 혼자 살아. 월 35만 원 정도 나라에서 받아. 지금은 굶는 사람은 없어. 근데 나는 동에서 쌀을 공짜로는 안 줘. 복지관에서 반찬은 줘. 쌀을 주면 그 금액만큼 기초수급금액에서 빼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쌀 안 받았지. LP가스 사려니까 돈이 없어. 작년 3월에 다쳐서 올해까지 돈벌이를 못 했어. 나이가 많아서 식모로 오라고도 안 해. 나는 노인정에 안 가. 회비 내라고 하니까.(80·여)

정리=이진구 오피니언팀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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