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칼럼]누가 옷 벗고 누가 옷 입었나

  • 입력 2006년 8월 18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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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잘린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열흘 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된 아리랑TV 등의 자리에 (청와대에서) 너무 급(級)이 안 되는 사람들의 인사 청탁을 해 왔다. (그래서) 이건 정말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짓을 더는 하지 말든가, 나를 자르든가 하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를 잘랐다.”

유 전 차관은 ‘인사 청탁’을 한 인물이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라고 대놓고 밝혔다. 그러나 정권 비판에 격렬하게 반응하던 두 ‘홍보 전사(戰士)’는 웬일인지 침묵을 지켰다. 대신 청와대 대변인과 익명(匿名)의 관계자가 나서 “이 수석과 양 비서관이 특별히 입장을 밝힐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정무적(政務的) 차원의 인사(人事) 하나를 놓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라고 대변했다.

청와대가 뒤늦게 정리한 경질 사유란 신문유통원 사업 추진 부진, 조정 설득 능력의 부족, 청와대 조사 과정과 이후의 부적절한 언행이다. 이 정권의 핵심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신문유통원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데도 수수방관(袖手傍觀)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를 설득하고 조정해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 했으며, 조사 과정에서도 “인사 청탁을 받아주지 않아서 이러는 것이냐”는 등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적절치 못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유통원이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은 기획예산처의 예산 집행이 늦어졌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애초 정부와 공동배달사업에 참여한 신문사 쪽에서 자금을 분담하기로 했는데 영세 신문사들이 돈을 내놓지 못해 빚어진 구조적인 문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작 부도가 날 지경이어서 사채(私債)까지 얻어 틀어막았다는 신문유통원 강기석 원장조차 “유 전 차관에게 왜 책임을 물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도 유 전 차관이 “나름대로 직책에 성실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 차관이 ‘인사 청탁’을 거절하자 홍보수석실의 누군가가 문화부 직원을 통해 “(유 차관님) 배를 째 달라는 말씀이시죠. 예, 째 드리죠”라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조사해 봤는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더라고 했다. 그러자 그동안 입을 닫고 있던 양정철 비서관이 그제 한 인터넷언론에 기고문을 보내 ‘배 째 드리지요’는 “비열한 정치적 의도가 깔린 헛소문이다. 모두가 이름 석 자 걸고 당당히 진실을 가리자”고 나섰다. 그는 유 전 차관과 인사 협의를 했지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얘기’가 아니던가. 권력을 쥔 측의 ‘협의’가 청탁이 아닌 ‘압력’으로 받아들여지리란 것쯤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능히 안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쯤 되면 이 ‘급이 안 되는 이야기’는 논란의 가치가 없다.

공직의 임면(任免)을 당파적 정실(情實)에 의해 결정하는 엽관(獵官)제도의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까놓고 말해 ‘어떻게 해서 잡은 정권인데 우리 편 아닌 쪽에까지 나눠 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또한 어떤 정권도 정책 이념의 명분이든, 보상(報償)의 차원이든 엽관제의 틀에서 100%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줄여 나가자는 것이고, 하더라도 최소한 상식적인 선은 넘지 말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겠다고 했다.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진룡 파문’은 그것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광범위한 의혹과 불신을 낳고 있다. 앞의 정권들보다 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유난히 도덕성을 내세워 온 노 정권으로서는 제 칼에 제 몸이 베인 격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진실 게임’ 하듯 피해 갈 수는 없는 문제다.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이백만 양정철 두 비서관은 스스로 옷을 벗기 바란다. 그런 다음 ‘옷을 벗긴’ 유진룡 전 차관과 맞서야 당당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털어내야 자신들도 살고, ‘진보개혁 정권’도 그나마 얼굴을 들 수 있지 않겠는가.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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