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2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5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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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초여름인 4월도 하순이라 햇살은 따가웠다.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는 소성에서 팽성까지 50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 사시(巳時)에는 벌써 팽성 경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한필 유성마(流星馬)가 북쪽에서 달려와 패왕과 초군의 기세를 돋우었다.

“종리매(鍾離매) 장군이 범(范) 아부(亞父)의 명을 받들어 3만 군사를 이끌고 대왕을 돕고자 소성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유성을 떠나면서 저를 보내 먼저 대왕께 알리라 하기에 이리 달려오는 길입니다. 범아부와 계포 선생이 이끄는 본진은 어제 창읍(昌邑)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유성마를 몰아온 군사가 패왕에게 그렇게 알렸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이 빙긋 웃으며 여러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아부께서 너무 늦지 않게 군사를 제(齊)나라에서 물리셨구나. 오늘 우리는 팽성에서 푸짐한 저녁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소.”

그리고는 유성마를 달려온 군사에게 말했다.

“가서 종리(鍾離)장군에게 이르거라. 이리로 올 것 없이 바로 팽성으로 가서 북문을 들이치라고. 그리하여 되도록이면 신시(申時) 전에 북문을 깨뜨리라고 하여라. 과인도 신시까지는 팽성 서문을 부수어 놓겠다.”

많지는 않아도 북쪽에서 다시 한 갈래 우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패왕이 이끌고 있는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는 한층 높아졌다. 그들이 걸음을 배로 하여 팽성에 이르렀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그때 팽성 안의 제후군은 패왕이 헤아린 것보다 훨씬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연이틀 호릉과 유성에서 패보가 날아들어 북쪽만 잔뜩 노려보고 있는데, 그 아침 난데없이 소성이 떨어지고 관영과 조참의 군사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는 소식이 서쪽에서 날아들었다. 이어 북쪽에서 또 다른 초나라 군대가 내려오고 있다는 급보가 들려오더니, 정오도 되기 전에 패왕의 군사들이 서문으로 밀어닥친 것이었다.

제후들과의 잔치로 술에 취해 나날을 보내던 한왕 유방도 전날 패왕이 팽성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정신이 홱 들었다. 제후들과 어울려 줄곧 마셔오던 술을 끊고 한동안 찾지 않았던 한신과 장량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상한 무력감과 마비에 빠져 있던 한신이나 낙담과 비관 속에 칩거하고 있던 장량은 잇따라 날아드는 급보에도 얼른 깨나지 못했다.

“어제는 호릉에 있던 번쾌의 3만 군사가 한 싸움에 부서지고, 간밤에는 또 유성이 패왕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오. 이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제야 절박한 얼굴로 묻는 한왕에게 한신이 오히려 무덤덤한 말투로 받았다.

“모두 부풀린 낭설일 것입니다. 전횡이 죽었다는 말도 없고 제나라가 평정되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패왕은 등 뒤에 강한 적을 두고 돌아오는 셈인데 걱정할 게 무에 있겠습니까? 장졸들에게 명을 내려 암습이나 막을 채비를 갖추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낙양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대장군으로서 모든 싸움을 주도해온 한신이었다. 거기다가 언제나 주의 깊게 적정을 살피고 작은 첩보라도 소홀하게 다루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팽성에 든 지 보름 남짓에 사람이 달라진 듯 그렇게 받자 한왕이 오히려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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