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44>부평 ‘해피 홈’ 박서희 사무장

  • 입력 2004년 11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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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구 부평2동의 보육시설 ‘해피 홈’에서 어린이들과 우동을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는 박서희씨. 인천=황금천기자
인천 부평구 부평2동의 보육시설 ‘해피 홈’에서 어린이들과 우동을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는 박서희씨. 인천=황금천기자
인천 부평구 부평2동에 있는 ‘해피 홈’은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보육시설이다.

사무장 박서희씨(33·여)는 이곳에서 69명의 아이와 숙식을 함께 하며 살림을 챙기고 있다.

아직 미혼이지만 그의 주민등록등본에는 중학교 3학년인 민수(가명·16)가 아들로 등재돼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곳에서 ‘처녀 엄마’로 통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요양 중이던 그는 1991년 3월 한 잡지에 해피 홈이 소개된 기사를 보고 보육교사를 지원해 당시 3세 된 민수를 만났다.

민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이 없어 애를 태우던 1995년 가을 아예 민수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친자식처럼 따르던 민수에게 진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부모님은 시집도 안 간 딸이 아이를 입양해 호적에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계속된 설득에 마음을 돌려 지금은 방학을 이용해 민수를 데리고 고향에 가면 “우리 손자가 왔다”며 따뜻하게 반겨 줄 정도다.

그러나 민수는 중학교에 입학하자 무언가 눈치를 챈 듯 자꾸 눈길을 피하고 말이 없어졌다.

그는 민수와 함께 여행을 가서 자신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민수가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엄마한테 그동안 잘 키워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보고 너무 대견스러워 한없이 울었다.

13년째 이곳에서 일하다 보니 ‘왕엄마’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아이들의 과거를 모두 꿰고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홀어머니가 목숨을 끊어 고아가 된 미진이(가명·15), 아버지가 장기수로 수감 중인 영섭이(가명·17)처럼 하나같이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이지만 품성은 누구보다 바르다.

경기가 좋지 않아 후원금이 자꾸 줄어 걱정이라는 그는 “부모에게서 버려졌다는 아픈 기억 때문인지 자다가도 몇 번씩 깨어 우는 아이를 보듬을 때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결혼 계획을 묻자 박씨는 “민수를 아들로 받아들이고 삶을 다할 때까지 부모의 책임을 함께할 남자가 나타나면 주저 없이 결혼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032-518-2080

인천=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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