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北, 고운가 미운가

입력 2004-05-05 18:38수정 2009-10-0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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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용천 참사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1t짜리 폭탄 100여개가 한꺼번에 터진 듯한’ 강력한 위력에 북한은 물론 남한까지 요동쳤다.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 전체가 후폭풍에 흔들리는 것 같다. 재앙을 계기로 북한이 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남한의 변화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맞을지 모르지만 사고의 여파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이후’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굳이 우리가 변했다고 강조할 필요는 없다. 고초를 겪는 동족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터인데 하물며 북녘 동포에 대한 지원을 누가 망설였겠는가.

▼용천지원 당연하다▼

남측의 지원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된다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울 때 도와줬으니 반대급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가진 자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으니 삼가는 게 옳다. 국내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주판을 튕겨 보고 나서 구호품을 보내는 사람이 없듯이 곤경에 빠진 북한 주민을 돕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북한이 변했다고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이번 참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용천 참사는 북한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읽어야 한다는 명제를 던졌다.

불의의 사고로 드러난 북한의 맨 얼굴은 불행의 집합체다. 북한 주민의 어려운 처지를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건물 수천 채가 부서져 폐허가 됐는데도 절규하는 사람이 없고 분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요구도 없다. 북한 주민은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됨됨이도 드러났다. 5일 현재 그가 용천 참사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다는 소식은 없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연일 외국에서 보내 온 위로전문만 보도하고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이 용천을 방문했다는 보도도 없다. 김 위원장은 몸소 현장을 찾아 인민의 형편을 살피고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이른바 ‘현지지도’로 유명하다. 북한 관영 언론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무려 207곳을 찾아 현지지도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엄청난 재앙으로 주민 전체가 고통을 받는 용천을 외면하는 사람이 이른바 북한 주민의 ‘위대한 영도자’이다.

반면 용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사고 현장에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챙겼다고 한다. 북한의 중앙통신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품에 안고 나오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영웅담처럼 전했다. 이렇게 허망한 짝사랑은 소설책에도 없다.

▼북한 주민의 짝사랑▼

북한 주민이 계속 지금 같은 형편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의 동포다. 북한 지도층이 싫다고 해도 불쌍한 북한 주민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급할 때 구호품을 보내는 ‘1회용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책은 이쯤에서 포기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조차 챙기지 못하는 지도부를 배려하느라 언제까지 할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시민단체들도 북한 지도자의 시대착오적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그 흔한 촛불집회라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 지도부가 아니라 북한 주민을 겨냥해야 한다. 그것이 용천 참사의 교훈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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