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병기/총선앞둔 ‘ 오버 페이스’의 유혹

  • 입력 2004년 3월 21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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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에 관한 책의 ‘오버 페이스(over pace)’ 항목을 읽다가 요즘 한국경제가 오버 페이스 뒤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한국스포츠과학원 성봉주 연구원에 따르면 오버 페이스를 하면 이를 깨닫고 속도를 늦추더라도 정상적인 페이스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근육 피로도와 혈압, 심박수가 급격히 증가해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버 페이스를 한 주자가 경기를 포기하거나 형편없는 기록에 머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 마라토너들은 평소 자신의 체력과 실력을 정확히 알고 구간마다 일정한 속도로 달립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경제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세계경제에서 떨어져 헤매는 것은 2002년 말 대선을 앞두고 오버 페이스를 한 탓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나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 신용카드 관련 각종 규제를 풀면서 내수경기를 한국경제의 체력 이상으로 부풀린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대 경제운용을 책임지는 고위 경제 관료들은 오버 페이스를 하든 말든 ‘구간 기록’만 잘 작성해 좋은 평가를 받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경제는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기 위해서는 기초체력과 스피드를 올리는 방법 외에 왕도(王道)는 없다고 합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도 고통을 참으며 기초체력을 쌓고 생산성 향상으로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고위 경제 관료들은 정치권의 압력이나 또 당대의 평가를 위해 오버 페이스를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겁니다.

이번 기회에 마라톤을 배우면서 경제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언론과 국민도 당대의 실적만 보고 경제 관료들을 평가하지 말고 그들이 얼마나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했느냐는 잣대로 평가하는 눈을 가져야겠지요.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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