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다시 보자]<2>벽화로 본 고구려…(9)명궁의 나라

입력 2004-03-15 17:49수정 2009-10-10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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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냥 그림의 백미로 꼽히는 중국 지안현 무용총의 벽화. 산과 들을 뛰어넘어 달리는 사슴과 호랑이, 그리고 이를 쫓아 활시위를 당기는 사냥꾼들의 모습이 사실감 있으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묘사됐다. -사진제공 이태호 교수
고구려는 말을 소중하게 여겼다. 말을 소홀히 다루거나 죽이면 천민으로 전락시키거나 중형으로 다스릴 정도였다. 천하를 장악한 기동성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의 말은 크진 않지만, 지구력이 뛰어났다. 과일나무 밑을 지날 수 있다 하여 ‘과하마(果下馬)’라 했고, 천리를 지치지 않고 달린다 해서 ‘천리마(千里馬)’라고도 불렀다. 대초원이나 들판 못지않게, 숲이 우거진 산지 전투에도 뛰어난 말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전하는 최고의 말로는 3대 대무신왕이 타던 ‘거루(거4)’라는 신마(神馬)가 꼽힌다.

●말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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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에 그려진 묘 주인의 말도 대체로 그런 신마처럼 그려져 있다.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벽화고분 안 칸 서벽의 황토마, 중국 지린성 지안현 장천 1호분 앞 칸 왼쪽 벽의 백마, 지안현 각저총 안 칸 좌벽의 백마와 적갈색 말 등 큰 나무 아래 마부와 함께 대기해 있는 모습이 그러하다. 말들은 모두 안장이 얹혀져 있고, 뛰어오르는 듯 기세 찬 자세다. 모두 상류층의 준마(駿馬)다.

고구려 마상궁술 훈련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덕흥리 벽화고분의 ‘마사희도’.

말을 중요시했기에 마구간과 마장(馬場) 그림도 등장한다. 황해도 안악 3호분이나 덕흥리 벽화고분, 남포시 약수리 벽화고분 등의 마구간에는 흰색, 검은색, 황토색, 적갈색의 말이 그려져 있다. 벽화 속의 고구려 말들은 모두 머리가 크고 두꺼운 목에 힘이 넘치며, 몸집에 비해 다리가 가늘고 짧은 편이다.

고구려의 전투력은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 상대를 명중시키는 마상궁술(馬上弓術)에서 나왔다. 그 훈련장면이 덕흥리 벽화고분의 안 칸 서벽에 보인다. 말을 타고 활을 쏘아 과녁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서쪽 뜰 ‘서원(西園)’에서 벌이는 ‘마사희(馬射戱)’라고 쓰여 있다. 아래에 5개의 네모진 과녁이 나무 기둥 위로 설치돼 있다. 오른쪽 2개의 과녁은 화살에 맞아 떨어져 있다. 마상궁술은 조선시대 무과(武科)의 한 과목으로도 계승됐는데, 5개 과녁 중 3개 이상을 맞혀야 합격했다.

벽화의 ‘마사희’는 두 사람과 대기조 두 명이 겨루는 2인 1조의 경기. 왼쪽 궁수는 몸을 뒤로 젖히고, 오른쪽 궁수는 앞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자세다. 그 위로는 두 명의 심판과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이 서 있다. 붓을 든 기록인 앞에 ‘사희주기인(射戱注記人)’이라고 써 놓았다. 인물들은 모두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머리에 흑건(黑巾)을 둘러맸다.

또한 마상궁술의 전투력은 사냥을 통해 배양되었을 것이다. 사냥은 실전에 가까운 경기이자 훈련인 셈이다.

●주몽(朱蒙)은 ‘활 잘 쏘는 사람’

사냥그림인 수렵도의 대표작은 지안현의 무용총 안 칸 오른쪽 벽에 보인다. 가장 고구려다운 주제와 뛰어난 묘사력의 벽화로 유명한 그림이다. 5명의 궁수는 절풍모에 조우관(鳥羽冠) 형태와 흑건을 쓰고 있다. 경당이나 태학 출신의 청년 관료층이다.

사냥대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 장천1호분의 ‘수렵도.’ -사진제공 이태호교수

근경의 거목 왼쪽으로 큰 주름의 흰색, 붉은색, 노란색의 산들이 위 아래로 듬성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산과 나무는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표현이다. 사냥장면은 이와 대조를 이룬다. 산을 가르고 뛰어넘어 달리는 사슴과 호랑이, 그리고 이를 쫓아 활시위를 당기는 기마인물들은 그리기 어려운 포즈임에도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난다. 사냥의 신바람이 동물과 인물의 탄력 넘치는 선묘에 실려 있다.

장천 1호분 앞 칸의 좌벽 수렵도는 무용총에 비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로 큰 나무와 언덕이 배치되고, 화살을 맞거나 피해 도망치는 동물들은 멧돼지, 사슴, 노루, 곰, 호랑이 등이다. 사냥에 참여한 인원은 중앙의 백마를 타고 활을 쏘는 묘 주인을 비롯해 10명이 넘는다. 말 탄 궁수, 언덕에서 창을 던지는 사람, 매사냥을 하는 소년 등이다. 그야말로 사냥대회의 와글거리는 소란스러움이 가득하다.

고구려에서는 이처럼 왕이나 고관이 직접 사냥을 나서 무인(武人)으로서 기량을 키웠다. 시조인 ‘주몽(朱蒙)’이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니 더 말할 나위 없다. 동천왕과 평원왕도 말과 활의 명장으로 이름났다. 옛 중국인들이 우리를 동쪽 오랑캐라는 의미로 ‘동이(東夷)’라 일컬었는데, ‘夷’는 클 대(大)와 활 궁(弓)을 합성한 단어이다.

이태호 교수 명지대 미술사학과

▼‘소 수레’는 고구려인 자가용▼

고구려시대에 말과 함께 주요 이동과 운송수단은 소 한 마리가 끄는 수레였다. 벽화에 등장한 소 수레는 대부분 바퀴가 두 개인 이륜차(二輪車)로 그려져 있다. 요새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소달구지를 연상케 한다.

무용총 수렵도 오른쪽에 그려진 손님맞이용 소수레.

수레는 햇볕을 가리는 덮개 차양만을 설치한 개방형이 있다. 대체로 묘주인 남성용이다. 또한 수레에 타는 사람을 가리도록 가마를 얹은 폐쇄형이 있다. 가마의 앞이나 위로는 개방형과 마찬가지로 ‘ㅡ’ 자형이나 ‘ㅅ’자 꺾임형 차양을 치기도 한다. 주로 여성이 타거나, 손님맞이나 장례용으로 여겨진다.

수레를 끄는 소에는 동그란 코뚜레가 걸려 있고, 코뚜레에서 고삐가 매여 있다. 소와 수레는 바퀴의 축으로 멍에와 쇠막대기를 연결한 모습이다. 특히 코뚜레는 쟁기를 사용한 우경(牛耕) 농사법의 발달을 보여준다.

고구려와 달리 당시의 중국 미술에는 소 수레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이동 수단은 말이 끄는 마차(馬車)나 전차(戰車)다.

중국의 다두마(多頭馬) 전차를 누른 고구려의 저력이 그 황소 같은 뚝심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구려 사람들은 날랜 말과 우직한 소를 모두 능란하게 다루어 ‘대(大) 고구려’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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