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경영 중단하고…”
서울 A금융회사 빌딩에는 인신공격성 문구들이 적힌 플래카드 수십개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이 회사에서는 임금협상에서의 이견으로 5월 초부터 부분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노사간에 이견이 있으면 파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폭’ ‘아부’ 등 폭언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업이나 기업인은 마구 대해도 되는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는 반(反)기업 정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반기업 정서가 기업하려는 의욕을 감퇴시키고 경제성장 잠재력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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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경영진을 감금 폭행하는 노조는 물론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정부, 기업가를 ‘부도덕한 졸부’쯤으로 여기는 일부 국민 등 한국 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 효과를 따지기보다는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로 번지는 것에서도 반기업 정서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여러 가지 조사들은 한국 사회의 반기업 정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월 전국 10∼60대 남녀 2509명에게 ‘기업에 대한 인상’을 물어본 결과 ‘다소 나쁜 편이다’(52.7%)와 ‘아주 나쁘다’(6.6%) 등 부정적 인식이 5명 가운데 3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족벌경영’ ‘문어발식 확장’ ‘정치권력과의 밀착’ ‘빈부격차 심화’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국적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조사에서도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세계 22개국 가운데 한국이 기업에 대한 정서가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을 이윤추구단체가 아니라 사회봉사단체로 착각하는 일도 많다. 현대자동차는 얼마 전 전혀 관계도 없는 모 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 앞에 몰려와 “미국에 시위하러 갈 여비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똥물을 퍼붓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기업을 ‘봉’으로 보거나 범죄집단처럼 취급함으로써 기업인들이 자부심과 사업 의욕을 잃는다는 것이다.
홍익대 경영학과 김종석(金鍾奭) 교수는 “선진국에도 반기업 정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진국과 다른 점은 이런 정서를 정치적, 집단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지 않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국가전략이나 정책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라며 “기업에 대한 반기업 정서가 강화되고 이에 휘둘릴 경우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국민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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