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81회…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 (9)

  • 입력 2003년 4월 1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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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33년 6월, 우철과 인혜의 아들 신태가 태어났다. 시대는 만주사변, 상해사변으로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소리 낮춰 수군덕거리던 때. 1936년 8월, 우철은 호외를 통해 조선인 선수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안다. 우철의 가슴에 환희와 질투가 교차한다.

따로 따로 떠 있다가 흘러서는 합쳐져, 봉긋한 젖가슴처럼 부풀어오르는, 몇 년 만일까? 이렇게 구름을 올려다보는 것이? 지금은 내 얼굴도, 나를 보는 누군가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 마냥 구름만 바라보고 싶다. 메뚜기가 얼굴 위로 폴짝 뛰어넘는가 싶었는데, 코 위에 뭐가 앉았다. 눈을 조아리고 보니, 부옇게 하양 검정 줄무늬가 보였다. 각다귀다, 뭐 물리면 어떠랴, 내 피를 빨고 싶거든 얼마든지 빨아도 상관없다.

다리가 생기면서 왕래가 활발해지고, 시장이 서는 날에는 배다리로 건너던 때보다 벌이가 좋아졌지만 그래봐야 기껏 열 켤레쯤 더 팔리는 정도다. 고무신이 한 켤레도 팔리지 않을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사람들의 살림이 지금보다 더 궁해지면, 닳아서 구멍난 고무신이라도 신고 다닐 것이고, 제 손으로 꼰 짚신으로 견디는 일도 있을 것이다. 슬슬 고무신 장사는 접을 때다, 돈이 될만한 다른 일로 바꿔야 한다. 가령 기록 단축에 성공하여 4년 후에 있을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한들, 일본이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아내, 열한 살 난 동생과 세 살 난 아들, 여섯 살짜리와 이제 생후 넉 달 된 딸, 이번에 태어나는 아이는 아들일까, 딸일까?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려면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10년? 15년?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바람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바람이 너무 강해서 배와 등을 세게 얻어맞았을 때처럼 숨이 막히고, 첫닭이 울기를 고통스럽게 기다렸던 밤도 있었다. 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데, 달리지 않을 때는 달리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달린다! 온 마음과 몸을 긴장하고, 그리고 도약한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단숨에 본다 퍼지는 빛을 흔들리는 그림자를 큐큐 파파 나는 단숨에 느낀다 고동치는 가슴을 발 아래로 흐르는 지면을 큐큐 파파 나는 단숨에 듣는다 큐큐 파파 내 숨소리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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