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 앞으로 5년, 60일에 달렸다]<5>외교안보

  • 입력 2003년 2월 7일 2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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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국익의 핵심축이다.

보이는 안보행위를 국방이라 한다면, 보이지 않는 안보행위가 바로 외교인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당선자는 국가의 핵심 어젠다로서 외교정책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데 최우선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정책이 다 그렇지만 특히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정책 우선순위와 현안 해결의 완급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철저하게 국가이익의 관점에 맞춰야 한다. 만일 대통령당선자가 외교정책을 결정할 때 정치적 이해관계와 업적, 당선자의 소속 정당이나 출신지역 등을 고려한다면 이는 외교정책을 국내 정치의 포로로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근시안적인 사익이 국가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외교문제와 관련해 대통령당선자는 취임하기 전까지 최소한 다음의 다섯 가지 사항들에 대한 기초 준비를 끝내야 한다.

첫째, 당선자는 국경 없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우리의 외교적 원칙과 비전, 그리고 이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를 구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취임하는 즉시 국민과 세계 앞에 자신의 집권 5년 동안의 외교적 비전을 제시해야만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외교정책의 투명성과 예측성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북한 핵 문제 등의 외교정책에서 혼선을 빚었던 것은 그가 당선자 시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에 강력한 외교적 목표와 뚜렷한 정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냉전체제 해체라는 격변 상황에 무리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둘째, 당선자는 외교정책의 목표와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인사들을 발굴하고 효율적인 외교정책 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당선자는 자신의 외교정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새 정부의 외교정책 의제를 성공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 그러나 당선자는 선거기간 중에 제시한 외교정책 비전이 현실과 어긋날 때에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등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외교적 행위가 국익을 관철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란 점에서 외교 정책의 집행은 가능한 한 초당적인 지원과 협력을 얻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외교정책의 성공적인 수행 여부는 야당과 의회로부터 얼마나 폭넓은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집권당이 원내 소수 정당인 경우에는 초당적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당선자는 외교정책 수립 단계부터 야당과 의회의 외교 정책 전문가들에게서 의견을 듣고, 이들과 보이지 않는 핫라인을 설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 동맹국과의 원활한 관계 설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국제화 시대의 외교는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것 못지않게 국제사회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의 외교 의제를 동맹국들에 이해시키고 설득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서 핵심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접촉 루트를 개설하는 것이 당선자에게는 급선무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드러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선자의 외교행위는 자칫 현직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충돌을 빚어 국익의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기했던 외교 정책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재고해야 한다.

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주장했던 정책일지라도 ‘국익의 설계자’라는 새로운 현실과 입장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보다 큰 국가 이익을 위해 이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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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2000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할 때 내놓았던 외교정책과 실제 집권 후에 실행하고 있는 외교 정책간의 차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후보 시절 부시 대통령은 철저하게 다원주의 외교정책을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주장과 정반대인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중동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동맹국들과 긴밀히 상의해 나가며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취임 후에는 이를 폐지해 버렸다. 그는 또 미국이 외교 정책을 수행할 때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면 국제사회는 미국을 환영할 것이지만, 만일 미국이 오만한 태도를 취하면 국제사회는 똑같은 방식으로 미국을 대할 것이란 주장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집권 후 그의 외교정책은 선거운동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외교정책을 변화시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9·11테러로 인해 세계가 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외교정책도 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이 같은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 국민은 지금의 부시 대통령의 정책이 미국의 국익을 지키고 확대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정책은 단지 국민을 좌절시키는 것으로 끝나지만 외교정책은 국민을 죽일 수 있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당선자가 끝까지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격언이다.

장성민 미국 듀크대 객원연구원·정치학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당시 쿠바해상봉쇄의 발효를 선언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의 현대 외교사에서 베트남전과 쿠바 미사일 위기는 외교정책의 실패와 성공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 끝난 베트남전은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분열되고 국론이 갈라지게 된 경우다.

그러나 62년 10월 22일에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교적 결단으로 국론 통합을 이뤘고 자신의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쿠바 위기는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을 배치한다는 쿠바와 소련 양국의 비밀 합의에 따라 62년 10월 14일 중거리 탄도탄 미사일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정찰위성을 통해 이를 확인한 미국의 케네디 전 대통령은 10월 22일 TV를 통해 “소련이 미국에 대해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표하고 곧바로 쿠바에 대한 해상 봉쇄조치를 취했다.

16척의 소련 해군 선단이 쿠바로 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은 소련에 대해 즉각 쿠바 미사일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미소 초강대국이 핵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니키타 흐루시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미사일 철거를 결정하고 해군 선단의 복귀를 명령함으로써 쿠바 위기는 1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북한 핵 문제를 40년 전 미국이 맞닥뜨렸던 쿠바 미사일 위기와 정확하게 대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가 보여준 대응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정확한 정보와 신속한 판단력, 그리고 단호하고도 일관된 대응으로 미국의 턱밑을 겨냥한 소련의 미사일 배치 계획을 좌절시켰다. 미국 국민의 일치된 지원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정책을 성공하게 만든 결정적 배경이었음은 물론이다.

북한 핵 문제는 우리로서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지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미국이 쿠바위기와 베트남전에서 보여준 외교정책 가운데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적 위기 상황은 잘 대처하기만 하면 오히려 국민통합을 이루면서 역동적인 국가발전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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