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부는 한류… 유대-팔人 장벽 허물다

동아일보 입력 2013-05-13 03:00수정 2013-05-13 11:4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젊은이들 중심 한국드라마에 열광… 한드 팬클럽 활동 함께하며 소통
경외시하던 두 민족 화합에 기여
민족은 달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 유대계와 아랍계 사람들이 한류 콘텐츠를 소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중동 한류 콘퍼런스 기간에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열린 ‘코리아 스타일’ 전시장을 유대계와 아랍계 한류 팬들이 함께 찾았다. 오른쪽 히잡을 쓴 이가 아랍계인 알라 오비드 씨. 세계한류학회 제공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연구조교로 일하는 알라 오비드 씨(23)는 예루살렘 무슬림 구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다. 그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오비드 씨는 할머니에게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아랍어를 쓰며 팔레스타인계 학교를 다녔다. 히브리어를 쓰는 유대인과 활동 영역도 달랐다.

오비드 씨가 유대인과 소통하게 된 계기는 한류 인터넷 팬클럽 활동이다. 그는 16세인 2006년 인터넷 사이트에서 영화 ‘왕의 남자’를 본 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빠졌고 대학에 들어간 뒤 유대인들과 함께 한국어와 한국문화 수업을 들었다. “한국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유대인 친구가 생겼어요. 한류 팬이 별로 없던 시절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저를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유대인 한류 팬들은 저를 이해해줘 얘기가 통했죠.”

중동의 한류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공통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중동의 민족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대와 세계한류학회(회장 박길성 고려대 교수) 중동지부의 주최로 7∼9일 히브리대에서 열린 한류 콘퍼런스에서 니심 오트마진 히브리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유대계와 아랍계를 막론하고 한류 팬끼리 열정적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면 한류가 이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신문에 실린 한국 드라마 특집 기사. 세계한류학회 제공
이들은 한류의 어떤 점에 매료됐을까. 히브리대 사회·인류학부 박사과정인 이라 양 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 내 한국 드라마(한드) 팬들은 ‘한드를 좋아하는 이유’로 △세련미 △감성적인 접근 △예의바름 △로맨티시즘 △순수함 △가족 중심 가치를 꼽았다. 양 씨는 “조사 결과 한드의 팬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고, 민족에 관계없이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이들일수록 한국 드라마에 더 열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예루살렘에서 만난 한류 팬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엄격한 유대인 집안 출신이라고 밝힌 나오미(가명·22·텔아비브 오노 칼리지 법학과) 씨는 “이스라엘 드라마는 섹스가 난무하는 미국 드라마와 다를 게 없지만 한드 속 사랑은 순수하다”면서 “일본 드라마(일드)도 봤지만 한드는 가슴을 움직이는 데 비해 일드는 머리로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랍계 이스라엘 사람인 론자 유세프 씨(22·히브리대 스페인어과)는 “한드는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어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우리 집과 닮았다. 엎드려 절하거나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면서 “한국 가수들 역시 춤을 잘 추고 세련됐지만 무대 밖에서는 성실하고 예의바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류 콘텐츠 속에 담겨 있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한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크리스틴 유 씨는 “중동의 젊은 세대가 한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은 아시아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한다는 의미”라면서 “아직 시작 단계지만 한류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개선과 중동 화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수인 미국 휘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는 “원래 유사한 점이 많았던 동아시아와 중동 문화가 서구화로 단절됐다가 ‘21세기 실크로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교류하게 된 것”이라며 “한류를 계기로 중동에서도 자신의 고유 가치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한류 드라마 유교적 가치관, 이슬람문화와 닮아 공감” ▼

■ ‘중동 한류’ 각국 전문가 좌담

전 세계 12개 지회를 둔 세계한류학회는 이번 중동 한류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지역별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멜리스 베흐릴 교수, 쉬마 헤마티 씨, 다프나 주르 교수, 박길성 교수, 니심 오트마진 교수. 세계한류학회 제공
7∼9일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열린 한류 콘퍼런스는 중동의 한류 현황과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길성 세계한류학회 회장의 사회로 니심 오트마진 히브리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다프나 주르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이스라엘 출신), 멜리스 베흐릴 터키 카디르하스대 라디오·텔레비전·영화학과 교수, 쉬마 헤마티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동아시아과정 연구원(이란 출신)이 한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박길성=나라별로 한류의 인기 정도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주르=이스라엘의 경우 2006년 케이블 채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돼 인기를 끈 이후 한국 드라마(한드)가 소개되고 팬도 늘고 있다. 주로 인터넷에서 드라마를 보는데 팬들은 영어 자막을 히브리어로 바꿔 공유할 만큼 열성적이다.

▽베흐릴=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터키는 한류 콘텐츠보다는 자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최근엔 한류 콘텐츠 팬클럽이 생겨나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삼성과 현대가 더 유명하다.

▽헤마티=이란에서는 한드가 엄청난 인기다. 2006년 ‘대장금’이 국영방송에서 방영된 후 시청률이 85% 넘게 나왔다. ‘주몽’과 ‘동이’도 크게 히트를 쳤다. ‘주몽’에 출연한 송일국과 한혜진은 지금도 인기다.

▽박=중동에서 한드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오트마진=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정말 중요했다.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싸이와 같은 가수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헤마티=이란의 한류는 사극 중심이다. 온 가족이 저녁에 한국의 사극을 본다. 드라마의 유교적 가치가 이슬람 문화와 많이 닮았다.

▽박=한류를 계기로 한국의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나.

▽오트마진=기성세대는 한류를 잘 모른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점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큰 변화가 예상된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는 한국에 대한 시각이 지금과 무척 다를 것이다.

▽헤마티=내가 6∼7년 전 동아시아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부모님은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한국에 방문할 때는 정말 부러워하셨다. 몇 년 사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바뀌었다. 한국의 음식, 옷, 전통문화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박=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트마진=한류 덕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사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었지만 이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는 부족하다. 한류 팬 확대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러한 문제들도 고민해봐야 한다.

예루살렘=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이스라엘#한류#유대인#팔레스타인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