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김화성 전문기자의 눈]‘테크닉 육상’ 러시아를 배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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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남녀 경보 20km를 휩쓸었다. 러시아는 31일 현재 경보에서만 금 2개, 은 1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남녀 경보가 ‘러시아 잔치마당’이 된 것이다.

러시아는 ‘경보 지존’이다. 한국 양궁과 흡사하다. 왜 러시아는 경보에 강할까. 그건 국가가 정책적으로 육성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엔 초중고교와 대학에 경보전문학교가 있다. 좋은 선수가 끊임없이 나온다. 한국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한국 경보선수들은 중장거리를 하다가 경보로 바꿨다. 그마저 선수는 남자 10여 명, 여자 1, 2명에 불과하다.

경보는 ‘빨리 걷기’이다. 달리기 선수와 걷기 선수는 엄연히 다르다. 경보 인구는 서유럽이 훨씬 많다. 하지만 국제대회는 러시아와 중국이 휩쓴다. 중국도 러시아처럼 국가가 정책적으로 육성한다. 서유럽 국가는 대부분 단순히 ‘즐기는 경보’로 그친다. 대회마다 서유럽 심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러시아 경보는 걷는 것부터 다르다. 긴 보폭에 ‘나는 듯’ 걷는다. 분명 달리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거나,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다. 첨단 ‘걷기 기술’로 무장한 것이다.

러시아는 31일 현재 금메달 4개를 따냈다. 여자 3000m 장애물과 여자 7종경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보탰다. 미국 케냐 자메이카 에티오피아가 트랙에서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동안 러시아는 주목도가 낮은 종목에서 소리 없이 금메달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트랙을 휩쓸고 있는 흑인들도 분명 약점이 있다. 러시아는 그 틈새를 철저하게 공략했다. 여자 3000m 장애물 레이스를 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1위 러시아 율리야 자루드네바 자리포바(25)는 3∼5위를 차지한 케냐 선수들보다 10초 이상 앞서 들어왔다. 케냐 선수들은 허들을 넘는 데 미숙했다. 자리포바는 물결 흐르듯 허들을 넘었다. 허들 넘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경보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바로 그 약점을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한국 육상은 아직 메달 하나 따내지 못하고 있다. 남자 경보에서 김현섭(삼성전자)이 6위를 차지한 게 최고다. 남은 경기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육상은 러시아를 배울 필요가 있다. 기술종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여자 포환던지기에서 한국의 이미영은 16.18m를 던져 예선 탈락했다. 투척 각도가 33.4도에 불과했다. 우승한 뉴질랜드 밸러리 애덤스(21.24m)의 38.8도에 훨씬 못 미쳤다. 시작할 때부터 기술적으로 지고 들어간 것이다. ‘아시아의 마녀’로 불리던 백옥자 씨(16.28m)는 “만약 선수 시절 이상적인 투척 각도라든지 그런 것을 알았다면 훨씬 더 멀리 던졌을 것이다. 그 당시엔 그저 힘과 경험으로만 던졌다”고 말했다.

1970, 80년대 한국 음악 영재들은 조기 미국 유학을 통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다. 한국 육상도 이를 배울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러시아 경보학교에 보내 세계적인 선수로 키울 필요가 있다. 러시아만 따라하면 한국 육상도 희망이 있다. 적토마같이 질주하는 흑인 선수들의 틈새를 노려야 한다.―대구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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