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20여개월 대장정 뒷얘기

  • 동아일보

자리프 “떠나겠다” 협박… 케리, 주먹으로 책상 ‘쾅’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있었던 뒷이야기가 국제 외교가에서 화제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 최신호(27일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 간의 치열했던 협상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두 사람의 첫 상견례는 2013년 9월 이뤄졌다. 뉴욕 유엔본부 건물 복도에서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는 정도가 당초 목표였지만 케리 장관은 자리프 장관을 빈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30분간 예정에도 없는 단독 회동을 했다.

첫 만남 후 시작된 협상은 고성과 거친 행동이 오가며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6개국 공식 핵 협상을 사흘 앞둔 올해 3월 27일. 자리프 장관이 당초 합의 대상이었던 사안을 아예 넣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케리 장관은 밤 10시 사전 통보 없이 그의 숙소를 찾아 “이럴 거면 아예 협상 자체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강경한 자세가 먹혔는지 다음 날 이란 측이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가장 험악한 분위기는 5월 30일 6시간여 동안 이어진 마라톤협상 때였다. 자리프 장관은 “회담장을 떠나겠다”며 벌떡 일어났고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침묵하기도 했다. 그러자 평소 감정 동요가 없는 케리 장관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이 날아가 맞은편 이란 관리를 맞히는 일까지 벌어져 회담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주목받았던 케리 장관의 ‘목발 투혼’에 대한 뒷이야기도 있다. 당초 제네바 협상 중 잠시 짬을 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협상 결렬 위기를 맞아 울분을 삭이기 위해 ‘험하게’ 자전거를 타다 다쳤다는 것이다.

협상에서 매번 살벌한 풍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7월 4일 자리프 장관 제안으로 이뤄진 오찬 협상에 동석한 한 미국 측 참석자는 “함께 페르시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일종의 유대 관계가 형성돼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위기의 순간은 또 닥쳤다. 자리프 장관이 부당한 국제 제재가 이란의 세계유산까지 망쳐 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케리 장관은 “문화적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이란만은 아니다”라며 맞대응했다.

14일 협상 타결 회동에서 마지막으로 발언한 케리 장관은 감격에 겨운 듯 “나는 베트남전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이란과의 외교로 또 다른 전쟁의 참혹함을 막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개월이 넘는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란 핵 협상 타결은 꽉 막혀 있는 대북 협상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무엇보다 최고지도자의 타결 의지와 시한을 두지 않고 협상에 임하는 유연성은 북한 핵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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