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식민지배, 한국인 뜻 반해… 통절한 반성 - 사죄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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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병합’ 100년 담화… “왕실의궤 등 圖書 이른 시일 인도”

일본 정부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10일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총리담화를 발표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각료회의 의결을 거친 이날 담화에서 “100년 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며 “3·1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 동시에 추가적 역사인식을 담은 내용이다.

또 간 총리는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이른 시일에 이를 인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일부 강탈 문화재를 돌려준 뒤 공식적으로 문화재 반환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향후 한일 간에 문화재 반환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 日총리 담화 3가지 의미 ▼

① 강제병합 인정… 불법성은 언급안해
② “통절한 반성-사죄” 1995년 수준 되풀이
③ “의궤 등 圖書인도” 구체 성과물 진일보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가 10일 발표한 총리담화는 역사 인식과 구체적 후속조치에서 이제까지 일본 정부의 태도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일 과거사를 직시하겠다’는 민주당 정권의 전향적 역사관이 묻어난다. 다만 한일병합조약과 관련해 ‘무효’라거나 ‘강제’라는 표현이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를 교과서로 삼아왔다. 1995년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이번 담화에도 같은 표현이 들어갔다.

간 나오토 총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식민지 지배가 이뤄졌고, 그 결과 한국인이 문화와 자긍심을 잃었다는 점을 명시했다. 비록 ‘병합조약이 강제됐다’는 내용이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조약이 강제로 이뤄진 점을 간접 시인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인이 ‘문화를 빼앗기고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표현은 창씨개명과 한국어 말살 등 식민지 정책의 결과를 언급한 것으로 진일보한 역사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참의원 선거 참패로 궁지에 몰려 있는 간 총리가 다음 달 당 대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담화를 내놓은 것은 상당히 용기 있는 결단이다”라고 평가했다.

한일 지식인 1000여 명이 지난달 공동성명을 통해 ‘병합조약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된 것으로 원천 무효다’라는 내용을 총리담화에 포함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이 표현은 공동성명을 주도한 일본 지식인들도 “정부 담화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을 만큼 일본 정부가 공식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대목이 빠진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담화의 구체적 성과물은 역시 문화재 반환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여러 차례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고 올 2월에는 국회가 ‘조선왕실의궤 반환 촉구 결의안’까지 통과시킨 데 이어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도 이에 동조하자 일본 정부가 전격 수용한 것이다. 반환 대상과 관련해서도 조선왕실의궤에 한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 유래의 귀중한 도서’로 돼 있어 향후 협상에 따라서는 도서 형태의 문화재를 추가로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문화재 반환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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