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탄핵으로 기우는 野… 개헌 불지피는 與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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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중구난방 정국수습책

《 19일 전국적인 촛불집회가 예정된 가운데 정치권은 여전히 ‘최순실 게이트’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18일에도 야권과 여권 일각에선 ‘질서 있는 퇴진’에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각 진영의 속내가 담긴 주장만 쏟아냈다. ‘국회의 선(先) 국무총리 추천’, ‘대통령 탄핵 추진’, ‘조기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이 불협화음처럼 따로 놀았다. “퇴진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권으로 향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


[先 총리추천]“거국중립내각 총리 임명해 국정공백 해결”


 전날 야 3당 대표 회동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국회의 선(先) 총리 추천론은 18일 정치권, 특히 여당 비박(비박근혜) 진영에서 다시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서초포럼 특강에서 “여전히 법적으로 대통령인 그분과, 그분의 정부(政府), 여야가 빨리 합의를 통해 수습해야 한다”며 “첫째 국무총리 인선, 둘째 그 총리가 내각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비상시국위원회도 여야에 “거국중립내각 총리를 합의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국정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커져가는 국민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일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속내는 선(先) 총리 추천 카드를 꺼낸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박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 보세요. 당신(박 대통령)은 감옥으로 가겠지만 국가는 어디로 가겠는가”라며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국정 공백 아니냐”고 했다. 여기에 국회에서 탄핵을 결정한다고 해도 황교안 총리가 이끌고 ‘최순실 사단’ ‘우병우 사단’이 포진한 내각으로 되겠느냐는 고민도 담겨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대통령에게 총리 선임을 의논하겠다는 것은, 더구나 ‘부역자’ (새누리) 당 대표와 함께 논의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임기 보장 없이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달라”는 ‘약속’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총리 추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일부 중진은 21일 의원총회에서 이런 제안을 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 최순실 씨 기소, 26일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당도 총리 추천 문제를 논의할 타이밍을 찾을 것 같다”고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이와 관련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추진]“野 3당-非朴 합의로 탄핵소추 발의해야”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탄핵에는 그 시점과 실현 가능성 등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탄핵 시점은 20일로 예상되는 검찰의 최순실 씨 기소 직후에 하느냐, 내년 4월경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고 나서 하느냐, 아니면 그사이에 하느냐로 크게 나뉜다.

 먼저, 검찰이 최 씨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이 공범 혐의가 있다는 취지로 적시하면 탄핵에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르면 이달 안에 국회가 탄핵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때처럼 헌법재판소가 두 달 안에 결정해 준다면 내년 1월 안에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18일 “탄핵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 퇴진 운동에 더 전념한 뒤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26일 예정된 대규모 촛불집회가 지나고 난 뒤 민심의 향배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2일 2018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이후를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다. 늦어도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는 내년 4월 이후를 얘기하기도 한다. 그때까지 국회 추천 총리가 내각을 구성해 박 대통령을 압박하자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상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가 오기 때문에 현실성은 낮다.

 시점만이 문제는 아니다. 내년 3월까지 헌법재판관 9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돼 공석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럴 경우 탄핵정족수(6명 이상 찬성)를 재판관 7명 중에서 채워야 한다. 탄핵 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당의 찬성표가 문제다. 국회 탄핵을 위해서는 여권에서 29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협조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 때까지 탄핵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기 개헌]“새 헌법으로 조기 대선… 대통령 임기 단축”


 새누리당이 정국 수습 로드맵으로 ‘분권형 개헌’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야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주장이 거세지자 이를 막을 ‘제3의 해법’으로 개헌을 통한 조기 대선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이 개헌”이라며 “개헌 작업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향해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박 대통령 하야 뒤) 60일 만에 벼락치기로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느냐”며 “새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의 임기는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최순실 사태로 중단된 개헌 논의를 재점화한 이유는 지금이 오히려 개헌의 적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단적 폐해가 확인된 만큼 개헌 논의의 물꼬를 틀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이날 회의에서 권성동 의원은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 대통령제는 이제 생명을 다했다”고 말했고, 이철우 의원은 “하야나 탄핵은 만만치 않고 개헌이 현 시국을 극복할 계기”라며 정 원내대표의 발언에 힘을 실어 줬다.

 아울러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필패’ 위기감 속에 개헌으로 판을 흔들려는 속내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외에 유력한 대선 주자가 아직 없는 데다 당 지지율도 곤두박질치고 있어 독자적인 정권 재창출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에 개헌을 고리로 정치세력 간 합종연횡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포석이다.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 진영이 모두 개헌에 찬성하는 이유다.

 하지만 야권에선 여권의 ‘물타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 안 전 대표도 이런 이유로 정국 수습 로드맵에 개헌 이슈가 끼어드는 데 부정적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개헌안에 대한 야권의 동의가 필수적인 만큼 개헌 추진까진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탄핵#촛불집회#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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