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前 우루과이 대통령 별세…향년 89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4일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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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6일(현지 시간)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투표장에 도착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몬테비데오=AP 뉴시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던 호세 무히카 전(前) 우루과이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9세.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저의 동지, 무히카 전 대통령이 정말 그리울 것”이라며 무히카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전한 뒤 “그는 대통령, 활동가, 사회의 모범, 사랑받는 어른이었다”고 추모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의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지난해 4월경부터 식도암으로 투병하다 올 1월 항암 치료를 포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된 상황에서,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1935년 5월 20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무히카 전 대통령은 우루과이 국민에게 ‘페페(할아버지라는 뜻의 스페인어)’라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1960∼1970년대 군정 등에 맞서 ‘투파마로스’라고 부르는 좌파 무장·시위 게릴라 단체에서 활동한 그는 15년가량 수감 생활을 했다. 1985년 우루과이에서 군부 독재가 끝난 뒤 사면을 받고 정계에 뛰어들었다. 국회의원과 축산농림수산부 장관을 지낸 무히카 전 대통령은 2009년 대선에서 결선 끝에 당선돼 이듬해부터 5년간 국정을 운영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의 청빈한 리더십은 국내외에 큰 인상을 남겼다. 그는 대통령 급여의 90%를 빈곤퇴치 단체 등에 기부했고, 관저 대신 몬테비데오 교외 텃밭이 딸린 작은 집에서 부인과 함께 살았다.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타고 직접 출퇴근을 했고, 정장 차림이 아닌 편안한 복장을 선호했다. 검소한 모습이 화제를 모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2014년 5월 2일(현지 시간)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자택 앞에서 반려견 마누엘라와 함께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몬테비데오=AP 뉴시스
현지 방송 카날5는 무히카 전 대통령이 우루과이 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 등에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그의 재임 동안 우루과이 경제는 연평균 5.4%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빈곤도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낮게 유지됐다.

그의 개혁적인 정책은 일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 집권기 가톨릭 전통을 고수하던 우루과이는 낙태와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마약을 “엄격한 국가 통제 하”에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우루과이를 세계 최초로 기호용(오락용) 마리화나 완전 합법화 국가로 만들었다.

핵심 지지 기반은 좌파였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로이터통신은 무히카 전 대통령이 중도 우파 성향의 야당과도 유연한 대화를 유지하며 자기 집에서 열리는 바비큐 파티에 초대하곤 했다고 짚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게 고인의 입장이었다. 퇴임 무렵 지지율이 70%에 육박했던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상원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갔고 2020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특유의 시적인 표현으로 많은 어록을 남긴 정치인이기도 했다. “삶에는 가격표가 없어 나는 가난하지 않다”,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단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뿐”, “유일하게 건강한 중독은 사랑의 중독” 등의 발언은 아직도 회자된다. 2020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는 “수십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성공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현지 일간 엘옵세르바도르는 무히카 전 대통령을 ‘세계의 끝에서 등장한 설교자’라고 표현했다. 이어 “무히카 행정부에 대한 국내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고인의 반(反)소비주의적 수사와 소박한 생활은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우루과이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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