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 해저 4000m서 ‘엠파이어 빌딩 무게’ 압력에 내부 폭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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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 관광잠수정 참변]
타이태닉 488m 옆에서 잔해 발견
실종 4일만에 “탑승 5명 전원 사망”
“111년전 타이태닉처럼 경고 무시… 같은 장소서 비슷한 비극에 충격”

폭발로 탑승객 5명 전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 오션게이트의 타이태닉 잔해 관광 잠수함 ‘타이탄’ 모습.
폭발로 탑승객 5명 전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 오션게이트의 타이태닉 잔해 관광 잠수함 ‘타이탄’ 모습.
해저 4000m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태닉호 잔해 관광에 나섰던 ‘타이탄’ 잠수정이 교신 두절 4일 만에 산산조각이 난 채 일부 잔해가 발견됐다. 미국 구조 당국은 잠수정 탑승자 5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타이탄은 해수면의 약 400배에 달하는 해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치명적인 내파(catastrophic implosion)’로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내파는 외부 압력으로 구조물이 파괴되는 일종의 내부 폭발이다.

● 타이태닉호 488m 지점서 잔해 발견

존 모거 미 해안경비대 소장(1구역)은 22일(현지 시간)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잠수정 잔해가 타이태닉 뱃머리에서 약 488m 떨어진 해저 바닥에서 발견됐다”며 “탑승객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미 해저 탐사 업체 오션게이트 엑스페디션이 운영해 온 잠수정 타이탄은 18일 오전 8시 미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해안에서 약 1450km 떨어진 지점에서 잠수를 시작해 1시간 45분 만에 통신이 끊겼다. 그 후 4일이 지난 22일 오전 캐나다 심해에서 원격조종 로봇이 수심 4000m 해저에서 타이탄의 일부 잔해를 발견했다.

발견된 잔해는 탑승객들이 머물던 공간의 일부인 잠수정 선체 꼬리 부분과 선체 앞부분 등 총 5조각이다. 구조 당국은 발견된 선체 부위와 파손 상태 등을 통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모거 소장은 시신 수습 가능성에 대해 “해저 상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말을 아꼈다. 수색에 참여했던 대원들은 기자회견장 뒤편에서 연신 눈물을 닦기도 했다.

● “심해 압력에 선체 찌그러진 듯”

타이탄은 심해의 강한 압력에 선체가 찌그러지듯 파괴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데이비드 마켓 전 미 해군 대령은 NBC 방송 인터뷰에서 “그 정도(해저 4000m) 수준의 압력은 사람 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올라와 있는 것과 같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압력”이라고 말했다.

잠수정 폭발 시점은 교신이 두절된 직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해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해군은 18일 교신이 끊긴 직후 일급 군사 음향 탐지기를 통해 폭발음 비슷한 소리를 감지했다. 소리의 발원지도 잠수정 잔해가 발견된 장소 인근이었다. 해안경비대는 이 정보를 토대로 수색 범위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안경비대 측은 “사고 관련 시간별 상황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잠수정이 폭발할 정도의 소리라면 부표형 음파탐지기에도 포착될 수 있는데 현재로선 확인된 게 없다”고 했다.

● 캐머런 감독 “111년 전 참사 반복에 충격”

타이탄이 해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정전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일각에선 2021년부터 운항을 시작해 온 타이탄이 수차례의 심해 잠수를 진행하며 선체의 강도를 유지해 주는 티타늄 탄소 섬유에 ‘피로 균열’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타이탄 운항사인 오션게이트 측의 안전 의무 이행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션게이트의 전 임원은 타이탄이 심해 잠수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1997년 영화 ‘타이태닉’ 제작 과정에서 타이태닉호 잔해를 탐사했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날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11년 전인 1912년 타이태닉 참사와 비슷한 일이 거의 같은 곳에서 또 일어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타이태닉호 선장은 반복된 경고를 무시하고 흐린 날 밤에 유빙을 향해 돌진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이번에도 안전 경고를 무시한 유사한 비극이 일어났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억만장자 英탐험가-파키스탄 재벌 父子… 귀환 못한 3억짜리 여행


“재벌 아들, 무섭지만 아버지 위해 타”
타이태닉 희생자 고손녀 남편도 사망
타이태닉호를 보기 위해 잠수정 ‘타이탄’에 올랐다가 숨진 5명의 탑승객은 타이태닉호에 대한 관심과 함께 탐험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타이탄 운영사인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의 스톡턴 러시 최고경영자(CEO)는 부인이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한 스트라우스 부부의 고손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등석에 탔던 이 노부부는 사고 당시 다른 이들에게 구명보트를 양보한 뒤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러시 부부는 타이태닉 잔해를 수차례 찾아 나서기도 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아들 술레만(19)과 함께 타이탄에 오른 파키스탄의 재벌 샤자다 다우드(48)는 파키스탄의 최대 식품·비료 기업인 엔그로홀딩스의 부회장이다. 그의 누나는 미 NBC 인터뷰에서 “동생은 어릴 때부터 1958년 영화 ‘타이태닉호의 비극’을 여러 번 봤을 정도로 타이태닉에 집착했다”라며 “조카인 술레만은 이번 여행이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려 동반 탑승을 결정했다”라고 전했다.

항공업체 ‘액션에이비에이션’ 회장이자 영국 국적의 억만장자로 알려진 해미시 하딩(58)도 여러 기네스 세계기록을 보유한 탐험가다. 202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 해저를 탐사한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세운 민간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을 통해 우주여행을 다녀왔다.

프랑스 국적의 폴앙리 나르졸레(77)는 ‘미스터 타이태닉’이란 별명을 가진 해양 탐사 전문가다. 해군 출신인 그는 1987년 최초의 타이태닉호 복구 작업을 했고 타이태닉호 선체 인양권을 가진 기업에서 5000여 개에 이르는 유물 발굴 작업을 이끌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일각에선 14일(현지 시간) 그리스 해안에서 파키스탄인 약 400명을 포함해 750명의 실향민이 탄 선박이 침몰한 지 며칠 만에 억만장자들이 위험한 초호화 관광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사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8일 일정인 이 잠수정 관광의 1인당 비용은 25만 달러(약 3억4000만 원)에 달한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타이태닉 관광잠수정#참변#내부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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