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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국제

‘중공군 50명 사살’ 한국전 참전 일본인 미야무라 별세

입력 2022-12-01 08:36업데이트 2022-12-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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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홀로 50명 이상의 중공군을 사살하는 전공을 올리며 한미 양국에서 국가 최고의 무공훈장을 받은 미국계 일본인 미야무라 히로시 전 예비역 하사가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 CNN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야무라의 사망 소식은 미국 의회 명예 훈장 협회의 발표로 알려졌으며 피닉스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97세에 생을 마감했다.

미야무라는 1944년 징집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전투 기록을 작성하는 일본계 미국인 부대인 제442연대 전투팀에 배속된 후 1946년 제대했다.이후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현역으로 소집됐다.

한국전 당시 분대장이었던 미야무라는 1951년 4월 24일 밤 연천에서 관총 사수와 소총병으로 구성된 그의 부대는 전초기지를 방어하던 중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야간 공격에 분대원들이 부상을 입자 그는 이송을 지시한 후 홀로 남아 중공군과 싸웠다. 미야무라는 야간 전투에서 시야 확보가 어려운 틈을 타 총검으로 중공군 10명을 사살했다. 이후 진지로 복귀해 기관총, 라이플, 수류탄으로 폭파하며 중공군을 사살했다.

미국 의회 명예훈장 공적서에는 “미야무라는 탄약이 고갈되기 전에 50명 이상의 적을 죽였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라고 기록됐다.



수류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미야무라는 적군에게 발각된 후 28개월 동안 포로로 잡혀 기아 등에 시달렸다. 이후 휴전 이후 1953년 8월20일 미군 포로 중 한 명으로 석방됐다.

미야무라는 한국전 참전 당시 공로로 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4년 미야무라를 초청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미야무라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내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난 내 부하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며 “나는 내가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야무라는 1925년 10월26일 뉴멕시코주의 탄광촌이 형성된 갤럽에서 24시간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 편견을 경험한 적이 없다”며 “갤럽은 이민자들의 마을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탄광에서 일하는 가족에서 자랐다”고 회고했다.

미야무라는 한국전쟁 후 갤럽으로 돌아와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다. 그의 손녀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주 공군 기지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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