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는 왜 역대급 재고에도 투자를 늘릴까[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6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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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25)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나이키, 재고 44% 급증에도 자신감
최근 글로벌 경기가 꺾이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과잉재고 문제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NIKE)는 재고 때문에 최근 주가가 10% 이상 폭락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나이키는 최근 분기(6~8월)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난 126억9000만 달러(약 18조2480억 원)였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17억 달러(약 2조445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 급감했다.

매장과 창고, 배에 안 팔린 신발 박스가 가득 쌓였다. 나이키의 재고 자산은 97억 달러(약 13조9490억 원)로 전년 대비 44.2% 뛰었다. 북미에서는 재고가 65%나 급증했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발생한 운송 차질과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 달러 강세에 따른 악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실적 발표 다음 날인 9월 30일 나이키 주가는 83.12달러로 하루 새 12.81%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최고점(177.51달러) 대비 주가가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 나이키 최고경영자(CEO) 존 도나호의 코멘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는 “회사의 핵심 사업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서 “브랜드 모멘텀과 혁신 문화, 운영 전략이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번 분기 실적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미 투자은행 자문사 에버코어ISI의 오마르 사드 애널리스트는 한술 더 떴다. 사드는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스니커즈(운동화) 신발이 가져다준 편안함에 절대적으로 익숙해졌다. 스니커즈 수요 증가라는 슈퍼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라고 지난달 8일 전망했다. 그는 스니커즈 슈퍼사이클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기업으로 나이키를 꼽았다.

회사 대표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외부 전문가는 왜 나이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까.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나이키, 아마존과 깜짝 결별 선언
2019년 10월 나이키는 회사를 14년간 이끌어온 마크 파커 CEO가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운동화 디자이너 출신인 파커를 대신한 사람은 스포츠 브랜드와 거리가 먼 정보기술(IT) 전문가 도나호. 그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를 이끌었다. 이후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 서비스나우의 CEO와 세계 최대 전자결제시스템 업체 페이팔홀딩스의 의사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 미 USA투데이는 “10년 넘게 나이키를 이끈 마크 파커가 물러나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후임자가 도나호 CEO라는 것”이라고 평했다.

더 큰 폭탄선언은 한 달 뒤인 2019년 11월에 나왔다. 나이키가 아마존에서 판매 중이던 모든 상품을 철수하기로 한 것.

미국 소비자의 3분의 2가 아마존에서 제품을 검색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아마존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홈페이지 월 방문이 30억 건이 넘고, 130개가 넘는 국가에 제품을 배송한다. 미국 의류 업체인 갭의 전 CEO 아트 펙은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정신 나간 생각”이라고까지 했다. (이후 갭도 아마존에서 철수하기는 했다)

당시 나이키도 온라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아마존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마존에서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업계가 정말 깜짝 놀랐다. IT 매거진 쿼츠는 “나이키가 아마존과 2년간의 달콤한 썸을 끝내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나이키의 ‘탈 아마존’은 D2C(Direct to Customer) 전략의 일환이었다. 직접 판매(D2C)는 유통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고객을 자사 몰로 끌어들여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다른 루트를 거치지 않고 고객한테 직접 물건을 팔겠다는 것이다. 통상 브랜드 파워가 있는 회사가 D2C로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면 수익성이 높아지고, 할인 판매 등을 직접 관리하면서 고객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나이키 애플리케이션을 안내하는 홈페이지. 나이키 홈페이지
나이키 애플리케이션을 안내하는 홈페이지. 나이키 홈페이지
일대일 커머스의 귀환
이후 나이키는 가맹 대리점 등 외부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과감하게 줄였다. 이와 함께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직접 판매를 늘리면서 고객들과의 접점을 확대했다. 그러다가 몇 달 지나고 코로나19가 등장했는데, 해를 넘긴 전염병 대유행 동안 온라인 판매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나이키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9~11월 나이키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30% 뛰었다. 매출도 9%나 늘었다. 같은 기간 세계 2위 기업인 아디다스가 매장 폐쇄 여파로 매출이 35% 감소한 것과 상반된다. 다른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언더아머도 2020년 1, 2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각각 23%, 41% 감소했다.

도나호는 “2023년까지 전체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판매 비중을 30%로 설정했는데 코로나19로 갑자기 100%가 됐다. 디지털 플랫폼이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 된 것”이라고 했다. 나이키 온라인 공식 몰 회원은 2020년부터 1년간 7000만 명이 늘어 2억5000만 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나이키의 매출에서 직접 판매 비중은 40% 수준까지 늘어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나이키의 팬데믹 성과를 두고 “수년 동안 숨겨진 비용을 쌓아온 전통적인 중개인(전자상거래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밀려났다”며 “나이키는 ‘신성한 일대일 세계(직접 판매)’를 재창조했다”고 지난해 3월 전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에 과감히 투자를 늘리고 있다. 나이키는 9월 말 2년 안에 미국과 유럽에 200개의 신규 직영 매장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셀프 계산, 온라인 주문의 픽업 등 디지털 기술에 중점을 둔 매장이다. 단순히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에서 넘어서서 디지털 구매와 물리적 쇼핑이 매끄럽게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상점 특성까지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직전 분기에 재고가 급증하고, 경기침체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나이키가 자신감을 내비친 것은 그만큼 D2C 전략에 확신이 선 듯하다.

나이키 뉴욕 매장. 나이키 홈페이지
나이키 뉴욕 매장. 나이키 홈페이지
피라미드의 최상단, 조던
사실, 나이키가 사업 초창기부터 고객에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다. 창업 초기에는 ‘정점’을 공략해 제품 판매를 이끌었다.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신의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그의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1972년 운동화 회사를 차렸다. 브랜드명은 회사의 첫 정규 직원이자 나이트 대학원 동기인 제프 존슨이 꿈에서 마주친 승리의 여신(니케), ‘나이키(Nike)’로 정했다. 첫 제품은 트랙화 ‘코르테즈’였는데, 드라마 ‘미녀 삼총사’의 여주인공 파라 포셋이 TV에 이 신발을 신고 나오면서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1980년대 초반 나이키에게 운명적인 일이 벌어진다. 전설적인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마이클 조던을 만난 것. 1984년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졸업하고 NBA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했다. 나이키는 연 50만 달러(약 7억2000만 원)와 메르세데스벤츠 두 대를 주고 조던과 5년 계약을 맺었다. (사실, 조던은 나이키 운동화를 한 켤레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디다스와 계약을 희망했다고 한다)

나이키는 선수를 단순히 지원(스폰서십)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에어조던’을 론칭한다. 당시만 해도 선수 이름을 따서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꽤 도발적인 결정이었다. 제품 자체도 놀라웠다. 운동화의 99%가 흰색이나 검은색이었던 시절이었는데, 나이키가 내놓은 에어조던에는 시카고 프랜차이즈 색상인 빨간색이 들어가 있었다. 조던은 대학 시절 라이벌 팀의 유니폼이 떠올라 빨강을 ‘악마의 색’이라며 싫어했다. 조던이 좋아했든 싫어했든, 그는 고급 가죽으로 만든 에어조던을 신고 날아올랐다. 에어조던은 1985년 출시 첫 해 1억2600만 달러(약 1800억 원)어치나 팔렸다.

재미를 본 나이키는 조던뿐만 아니라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1978~2020)와 르브론 제임스 같은 선수들을 발굴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전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농구 코트 밖에서도 선수들이 착용한 신발을 신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힙합 아티스트들이 나이키의 농구화를 드레스 코드처럼 만들면서 스포츠웨어가 힙합 문화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나이트는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의 인터뷰에서 “게임 최상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일찍이 발굴해내고, 이들에 알맞은 기술·디자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며 “우리 제품의 60%는 실제 스포츠에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구입하지만, 우리는 항상 최상단을 목표로 했다”고 회상했다. 실력 있고 인기 있는 선수를 일찌감치 공략했던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는 설명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착용했던 ‘에어 조던1’ 농구화. 조던의 실제 사인이 들어간 이 농구화는 지난해 경매 시장에서 56만 달러(약 7억9700만 원)에 팔렸다. 당시 신발 경매 역사상 최고가였다. 뉴시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착용했던 ‘에어 조던1’ 농구화. 조던의 실제 사인이 들어간 이 농구화는 지난해 경매 시장에서 56만 달러(약 7억9700만 원)에 팔렸다. 당시 신발 경매 역사상 최고가였다. 뉴시스
정점에서 풀뿌리로, 고객과 마주한 나이키
조던이 코트를 휩쓰는 동안 스니커즈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거셌다. 레저 인구가 늘고, 직장인들의 복장 규정이 느슨해지면서 캐주얼 운동화가 보편화됐다. 신발 산업이 커지자 경쟁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복이 나이키를 위협했다. 나이키는 제품에 잘 해지지 않는 질 좋은 가죽을 주로 썼다. 리복은 내구성이 떨어져 주로 옷에 들어가던 가죽을 신발에 사용했다. 사람들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느낌에 곧바로 매혹됐고, 리복 제품이 유행처럼 번졌다.

나이키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키는 1980년대 초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러닝화 사업이 둔화하고 있던 것을 포착하고, 캐주얼 운동화 시장에 진출했다. 나이트는 “많은 사람이 직장이나 식료품점에 운동화를 신고 오가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우리도 기능성이 있는 캐주얼화를 내놓았지만, 대중이 우리 제품을 원치 않았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공급자 마인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985년 나이키 매출이 2분기 연속으로 감소했다. 회사는 직원 280명을 잘랐다. 나이트는 “매우 고통스러운 해고였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잃었다”고 언급했다.

나이키 경영진은 ‘고객이 우리 제품의 가치를 몰라보네’라는 변명 대신, 회사가 마주하는 소비자가 누구이고, 우리의 브랜드는 무엇을 대표하는지 고민했다. 나이트는 “우리는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내려와 풀뿌리 수준에서 많은 일을 했다. 아마추어 스포츠 행사가 열리는 체육관과 테니스 코트를 돌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나이키는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등산, 자전거 타기, 윈드서핑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이키는 1988년 미국 스니커즈 브랜드 ‘콜한’을 인수해 별도로 운영했다. 나이키의 약점이었던 드레스 슈즈와 캐주얼 운동화를 보강한 것이다. 나이키는 이후 4년 만에 콜한에서 인수 금액을 벌어들였다. 나이키는 최근에 D2C를 선언했지만, 1980년대 중반 회사가 휘청했을 무렵부터 고객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이키 ‘코르테즈’ 운동화들. npr 홈페이지
나이키 ‘코르테즈’ 운동화들. npr 홈페이지
“그냥 해(Just do it)”
나이키는 소비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경쟁과 결단력, 성취감, 재미 등 스포츠가 주는 여러 의미를 광고로 전달하고자 했다.

그렇게 등장한 슬로건이 1988년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다. 첫 광고에 마라톤 마니아인 80세 월트 스택이 등장한다. 광고에서는 운동선수도 아닌 이 노인이 30초 동안 다리 위를 조깅한다. 광고가 끝날 무렵, 슬로건이 등장한다. “Just do it.”

사람들은 러닝화의 탁월함을 넘어서서 나이키를 도전과 활력의 대명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애플 하면 혁신, 스타벅스 하면 공간 미학이 떠오르듯 말이다. 이 같은 브랜딩은 경쟁사와 차별화 요소가 돼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필요 없는 데도 가지고 싶고, 남들이 사니까 더 사고 싶은 그런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의 힘은 제품력이 기반이 돼야 한다. 나이트도 “좋은 제품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쁜 제품에 감정적인 유대감을 만들 순 없다”고 했다.

나이키가 3년 전, 아마존을 떠난 이유도 브랜딩 관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유통업체에서 소비자들은 보통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제품 종류를 검색한다. 그 결과로 고객은 가격, 고객 리뷰 등 정보들을 접하고, 여러 브랜드를 비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브랜딩이 희석될 수 있다. 브랜드에 대한 감정보다는, 여러 정보에 집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레너드 슐레진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아마존 같은 플랫폼에서 여러 비슷한 제품이 한 번에 나타나면 소비자의 마음에서 차별성과 특별함이 사라지는 ‘상품화 현상’이 일어난다”며 “일부 카테고리에서 아마존은 1g당 가격을 눈에 잘 띄게 표시하는데, 이는 소비자가 주로 가격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개성이 만연한 시대에서 상징적인 존재”
나이키는 제품 출시에서도 과거와 다른 면모를 보인다. 트렌드 변화를 눈여겨보고 최대한 다양한 스니커즈들을 내놓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을 통해 맞춤형 운동화를 제작하는 ‘나이키아이디(현 나이키 바이 유·Nike By You)’를 선보이기도 했다. 재질, 색상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의 이름까지 새길 수 있다. 취향 존중의 시대를 여는 데 일조한 것. 로버트 골드만 미 루이스클락대 명예교수는 나이키를 “개성이 만연한 시대에서 상징적인 존재”라고 평했다.

소량 다품종 생산으로 ‘맞춤형 마케팅’에서 재미를 본 나이키는 2018년 나이키플러스 멤버십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나이키플러스에서는 고객들에게 맞춤형 운동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러닝 운동화나 전자팔찌 같은 웨어러블 장비에 센서를 내장해 PC나 태블릿, 스마트폰과 연동시켰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달리는 경로와 시간을 제안하고, 운동 결과를 정리해 줬다. 무엇보다 마라톤 도전자나 달리기 선수가 각각의 수준에 맞는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친구나 운동선수 등이 포함된 커뮤니티와도 연결해줬다. 둘 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를 넘나들며 고객들에게 경험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작 MZ세대(밀레니얼, Z세대)의 마음을 뒤흔든 건 다양성도, 맞춤형도 아니었다. 희소성이었다. 나이키는 2015년 ‘SNKRS(스니커즈로 발음)’라는 앱을 만들고, 일부 신제품을 ‘드롭(Drop)’으로 판매했다. 영어로 ‘투하하다’라는 뜻을 가진 드롭은 한정판 상품을 불시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드롭의 개념은 1980년대 후반 일본 도쿄의 길거리 옷 가게 매장들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슈프림(Supreme)과 같은 유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이를 대중화했다. 당시 젊은 층은 한정판 패션 아이템을 사려고 몇 시간 동안 매장 밖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나이키가 2000년대 초반 선보인 운동화 맞춤형 제작 서비스 나이키아이디. 소셜미디어
나이키가 2000년대 초반 선보인 운동화 맞춤형 제작 서비스 나이키아이디. 소셜미디어
하늘에서 나이키가 떨어질까
나이키도 일찌감치 희소성에 몰리는 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2년에는 뉴욕과 도쿄에서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한 ‘덩크’를 500족만 판매했다. 덩크는 나이키가 1985년 처음 내놓은 농구화 시리즈 중 하나로, 색상과 디자인을 조금씩 바꿔 재발매해왔다.

전설의 운동화는 2005년에 등장한다. 미국 유명 디자이너 제프 스테이플과 나이키가 150족만 제작한 ‘나이키 덩크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이다. 비둘기 그림이 들어가 ‘피죤 덩크’라는 별칭이 붙었다. 신발의 발매가는 200달러(약 28만 원)였지만, 발매 당시 뉴욕 경찰이 구매자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에스코트까지 해줄 정도로 난리가 났었다. 이 신발을 사려고 사람들이 몰린 장면이 2005년 2월 23일 뉴욕포스트 1면을 장식할 정도였다. 피죤 덩크는 현재 3만여 % 오른 7000만 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키는 2015년 SNKRS라는 앱을 내놓으면서 이를 디지털화했다. 드롭에도 체험적 요소가 있다. 소비재 컨설팅 업체인 스낵스샷의 설립자 안드레아 허난데즈는 “드롭이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쇼핑을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면서 “원하는 제품을 당일에 받아보는 세상에서 드롭은 희소성과 독점성이라는 감각을 자극한다”고 했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감각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했다. 드롭에 당첨된 사람들은 SNS에서 이를 자랑했고, 이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나이키가 드롭을 활성화하면서 한정판을 모으는 수집가들과 운동화를 재테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고, ‘스탁엑스’ 같은 재판매 플랫폼들은 사업을 확대했다. 재판매 시장은 나이키에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블룸버그는 “나이키는 리셀러(재판매 업자)들의 과대광고로 간접적 이익을 얻고 있다”며 “재판매 시장의 존재는 새 제품의 굳건한 매출도 가능케 한다”고 지난해 3월 평했다.

오래된 운동화를 복원하는 직업도 생겨났다. 운동화는 새것을 한 번도 안 신고 잘 보관하더라도 빛에 노출돼 누렇게 변하거나, 밑창이 치즈케이크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각종 복원 기구를 갖춘 전문가에게 수선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WSJ은 “새로운 유형의 장인들이 운동화의 무너진 밑창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젖은 스웨이드를 구출하고 있다. 수십 년 된 운동화를 죽음의 위기에서 되살리는 중”이라고 4월 전했다. 이들은 통상 200달러(약 28만 원)를 스니커즈 복원비로 받는다고 덧붙였다.

미 투자은행 코웬앤드컴퍼니는 2019년 20억 달러(약 2조8300억 원)였던 글로벌 스니커즈 리셀 시장 규모가 2025년 60억 달러(약 8조49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5년 2월 23일 뉴욕포스트 1면을 장식한 나이키. 신문에는 나이키 매장 앞에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운동화 폭동’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소셜미디어
2005년 2월 23일 뉴욕포스트 1면을 장식한 나이키. 신문에는 나이키 매장 앞에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운동화 폭동’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소셜미디어
나이키판 엄마찬스
나이키는 슈프림, 오프화이트 등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트래비스 스캇(래퍼), 톰 삭스(아티스트), 리카르도 티시(지방시와 버버리의 디자이너)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 제품들을 소량으로 내놓으면서 희소성을 극대화했다. 극소량의 제품들은 선착순이 아닌, 추첨식(드로우·Draw)으로 판매했다. 아예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해 나이키는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오프화이트 창립자)와 만든 한정판 제품(에어포스1)을 공개했는데, ‘현대 패션 장인’으로 불리는 아블로가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나면서 재판매 가격이 수천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한정판 전략이 순탄하게 흘러오지만은 않았다. 운동화 구하기가 전쟁을 방불케 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카드 결제를 빨리하는 법’ 같은 조언들이 오갔다. 심지어 자동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봇(Bot)’이 거래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는 뜻하지 않게 ‘공정’ 이슈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나이키 북미 사업 부문 대표였던 앤 헤버트 부회장은 한정판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러 아들 조 때문에 25년 일한 회사를 떠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조는 리셀 사업을 하면서 엄마 명의의 신용카드로 13만2000달러(약 1억8700만 원)어치 한정판 나이키를 사들인 뒤 이를 되팔았다. 조는 신용카드로 임직원 할인을 받아 구매하고 비싸게 되팔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나이키판 엄마찬스’ 이후 고객들은 소매 업체들이 한정판 일부를 빼돌렸다가 비싸게 팔고 있다는 의심을 내비쳤고, SNKRS 앱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당첨자를 선정하는 알고리즘은 어떻게 작동하며, 봇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이었다. 한 나이키 고객은 “다시 SNKRS 앱을 켤 바에야 차라리 쇼핑몰에 15시간 진을 치고 나오자마자 도둑맞는 쪽을 택하겠다”고 SNS에 비꼬기도 했다.

나이키는 오프화이트와 협업한 한정판 덩크 50만 족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판매했다. 무작위 추첨이 아닌, 나이키를 많이 이용하고 이벤트 등에 참여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헌신 점수’를 매겨 구매할 기회를 줬다. 그런데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올해 9월에는 ‘리셀’을 금지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이용 약관에 ‘재판매를 위한 구매 불가’ 항목을 신설한 것. 업계는 충성 고객을 지키기 위한 선언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나이키가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오프화이트 창립자)와 만든 한정판 ‘에어포스1’ 제품. 루이비통 홈페이지
나이키가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오프화이트 창립자)와 만든 한정판 ‘에어포스1’ 제품. 루이비통 홈페이지
루이비통을 꿈꾸는 나이키
나이키가 온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직접 판매(D2C)하려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순서일지 모른다. 아마존에 판매를 맡기면 아무리 제품이 많이 팔려도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아마존과 이별하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제품 수요를 예측하는 스타트업 ‘셀랙트’와 데이터 통합 플랫폼 스타트업인 ‘데이터로그’를 인수했다. 그만큼 나이키는 고객 데이터의 중요성을 잘 아는 회사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나이키는 팬덤을 유지하면서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 끊임없이 체크해왔다”며 “디자이너들이 만든 제품과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갭(차이)을 줄여나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건을 직접 팔겠다는 것은 가성비 라인보다 고가 제품을 판매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이키가 한정판 판매에서 내홍을 겪으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어느 정도 직접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최근의 일들이 오프라인에서 소매 파트너 수를 줄이고 직영 매장을 늘리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나이키가 직접 판매 위주로 사업을 운영하는 명품 브랜드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는 “나이키의 한정 제품 판매가 회사를 구찌나 루이비통 같은 고급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면서 “소매업체를 제외하고 상품을 더 독점적으로 판매하면 회사의 이미지와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3월 전했다. 럭셔리 제품 자문 회사 오르텔리의 상무이사 마리오 오르텔리는 “럭셔리 브랜드는 평균 소비자 직접 판매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나이키는 이 비중이 40% 수준인데, 2025년 60%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직접 판매에 부담 요소들도 있다. 환불을 요구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와 직접 대면해야 하고, 기존 소매 판매망의 선반에는 경쟁사들의 제품이 올라갈 것이다. 전략이 삐끗하면 아디다스, 뉴발란스 같은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뜻이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나이키 경영진은 회의에서 운동화에 열정을 가진 충성 고객들이 뉴발란스 같은 브랜드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러너들이 나이키 앱의 실시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만든 예술 작품들. 달리는 동안 온라인 지도에 이동 경로가 표시된 점에 착안해 ‘호랑이’부터 영화 ‘겨울왕국’의 캐릭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유명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까지 재치 있는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러너들이 나이키 앱의 실시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만든 예술 작품들. 달리는 동안 온라인 지도에 이동 경로가 표시된 점에 착안해 ‘호랑이’부터 영화 ‘겨울왕국’의 캐릭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유명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까지 재치 있는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예술 작품 만드는 러너들
사실, 나이키처럼 아버지 세대부터 지금의 젊은 층까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은 브랜드가 흔치 않다. 나이키는 올해 5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사람들은 아직 나이키와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NYT)는 “달리기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이키 앱의 실시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온라인 지도에 예술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9월 24일 전했다. 자신이 이동한 장소들을 지도에서 선으로 연결해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부터 영화 ‘겨울왕국’의 캐릭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유명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까지 SNS에 다양한 작품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이키에게 상품이 판매되는 것 못지않게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나이키는 50년 뒤에도 지금처럼 사랑받고 있을까. 아무튼, 쇼핑에도 달리기에도 재미가 필요한 시대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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