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마리우폴 주민 4만명 시베리아·사할린섬 등으로 강제 이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4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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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 주민 4만 명을 8000km 떨어진 시베리아, 사할린섬 등으로 변방의 극동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 노역에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옛 소련이 연해주 일대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과 판박이다. 러시아군이 봉쇄중인 마리우폴 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습기찬 지하실에서 시체가 썩어나가는 처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제철소 생존자들이 증언했다.

CNN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시민 4만 명을 시베리아 등으로 끌고 가 강제로 이민 증명서를 발급한 후 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낙후된 지역으로 이주시켜 부족한 노동력을 보강하는 동시에 이들을 인질삼아 추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BBC는 러시아군이 체첸 침공 때도 수천 명의 민간인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며 “강제 이주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다.

최근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허용한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탈출한 시민 127명은 3일 남동부 자포리자에 도착했다. 이들은 나치 독일도 이 정도로 민간인을 탄압하지 않았다며 제철소 상황이 지옥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제철소 직원 세르게이 쿠즈멘코 씨는 CNN에 “2개월 째 환기가 되지 않는 습기가 많은 지하 벙커에서 시체가 썩어갔다. 다친 군인도 가득하다”고 참상을 전했다. 아직 200명의 민간인이 통조림, 설탕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고도 했다.

3일 수도 키이우 인근 이르핀에서는 290구의 민간인 시신이 추가로 발견돼 러시아의 만행이 거듭 지탄받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서부 르비우 내 발전소 3곳도 공격해 도시 대부분의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폴란드 등을 거쳐 보급되는 서방의 군수물자 지원을 막기 위한 공격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3일 남부 앨라배마주에 있는 록히드마틴 공장을 찾아 현 사태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전쟁”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이 공장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유용하게 쓰고 있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생산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이날 서방 지도자 중 최초로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명연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것이며 지금이 ‘최고의 시간(finest hour)’”이라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김민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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