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국영방송 인기 토크쇼서 우크라 공습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2일 0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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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1’의 토크쇼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패널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듣고있다. 러시아 국영방송 영상 캡처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1’의 토크쇼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패널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듣고있다. 러시아 국영방송 영상 캡처
러시아 국영방송의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나왔다. 러시아 국영 TV 러시아1에서 ‘크렘린의 입’으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가 진행하는 황금시간대 토크쇼에서다. 솔로비예프는 최근 유럽연합(EU)이 지정한 제재 대상에 올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0일 이 토크쇼에 나온 초대 손님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빗대며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영화감독 카렌 샤크나자로프는 이날 솔로비예프에게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같은 도시를 생각하면 고통스럽다. 어떻게 돼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곳 상황이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치닫는다면 우방인 중국 인도도 결국 우리와 거리를 두도록 압박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전 세계에서 들끓는 (반전) 여론도 나쁘게 작용할 것이다. 이 ‘작전’을 끝내는 게 국내 상황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널로 출연한 학자 세묜 바그다사로프도 “우리가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에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요? 심지어 상황이 더 안 좋은데?”라고 반문했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1989년)은 러시아인에게는 뼈아픈 기억이다. 소련은 침공 10년 만에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손실을 입고 치욕스럽게 철군했고, 2년 뒤 해체됐다. 솔로비예프는 황급히 그의 말을 중간에 막았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특수군사작전’이 우크라이나 나치 세력으로부터 러시아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선전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사이트, 독립방송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국영방송은 러시아 국내에서 우크라이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은 러시아에도 전해진 듯하다. 텔레그래프는 “지난주 러시아 SNS에서는 러시아 장병의 어머니가 시베리아 주지사에게 ‘크렘린이 아들을 총알받이로 쓰고 있다’고 맹비난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경찰의 탄압에도 러시아 곳곳에서 작은 (반전) 시위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 채널 즈베즈다 영상 캡처
러시아 국방부 채널 즈베즈다 영상 캡처
러시아 국방부 채널 즈베즈다 영상 캡처
러시아 국방부 채널 즈베즈다 영상 캡처
러시아1 외에도 러시아 국방부가 운영하는 채널 ‘즈베즈다’ 토크쇼에서는 현역 군 관료가 “러시아 장병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 진행자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 관료가 “도네츠크 루간스크를 비롯해 그곳에서 우리 대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자 진행자는 “아니, 아니, 아니”라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멈춰!”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 관료는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진행자는 “이제 좀 멈춰주겠나”라고 고함쳤다. 그는 “우리 군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겠다. 우리 군은 파시스트들을 물리치고 있다. 이건 러시아군의 승리이고 러시아의 부활이다”라며 수습에 나섰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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