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송승환 해설위원, 베이징공항서 패럴림픽 걱정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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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국 분이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3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서 2022 베이징 겨울 올림픽 취재를 위해 입국 절차를 밟던 본보 취재진에게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송승환 KBS 해설위원(65)이다. 2018 평창 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2020 도쿄 올림픽 개·폐회식 해설을 맡았던 자타공인 ‘올림픽 베테랑’이지만 이번 올림픽을 위해 베이징에 온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송 위원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시력이 나빠져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가장 큰 크기로 설정한 글씨조차 눈 앞 3cm까지 가져와야 겨우 읽을 수 있다. 입국 전 그는 항공사 직원에게 휠체어와 안내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항공사 직원의 공항 입장이 승인되지 않아 무산됐다. “허용되지 않은 외부인을 공항에 들이는 건 방역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송 위원은 “중국도 올림픽이 끝나면 곧바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휠체어도 안내원도 금지시키는데 대회를 잘 치를지 의문이다”라며 씁쓸해했다.

본보 취재진이 송 위원을 부축하며 수속을 돕자 방역복을 입은 한 공항 관계자가 다가와 “노 투 펄슨(No two person)”이라며 두 사람이 붙어 있는 걸 막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처음에는 이를 잘 믿지 않으려 했다. 가슴에 공산당 표식을 붙인 한 간부급 관계자가 다시 사정을 듣고 해당 관계자에게 “어르신을 잘 모셔라(好好照顧老人)”라고 말했지만, 다음 관문을 거칠 때에도 ‘노 투 펄슨’이라는 말을 듣고 사정을 설명해야 할 일이 잦았다.

공항 곳곳에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흔적들이 가득했다. 입국자들이 대기하는 의자, 안내문을 놓아둔 책상 위에는 소독약이 말라붙은 허연 자국이 덕지덕지 있었다. 입국수속 때 여권을 받아든 공항 직원의 라텍스 장갑을 낀 손도 여러 번 알콜을 뿌려 축축해진 나머지 직원이 건네준 여권 일부가 눅눅해져있을 정도였다.

수하물을 찾는 모습도 평소와 달라 낯설었다. 비행기 밖으로 뺀 승객들의 수하물은 공항 내 내 컨베이어벨트 대신 야외 한 구석에 그대로 놓였다. 입국자들의 입에서는 “이게 무슨 일이냐”, “여기서 짐을 찾으라니…”같은 한탄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자신의 짐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난장판 같았다.

낯설고도 낯선 모습에 가뜩이나 눈이 불편한 송 위원은 끊임없는 고통을 받았다. 방송사에서 송 위원을 위해 제공한 안내차량마저 올림픽 전용 차량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항 출입이 금지됐다. 송 위원도 공항에서 자신의 숙소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찾아야 했다. 본보 취재진과 숙소가 달라 서로 다른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취재진의 등 뒤로 송 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저 좀 도와주세요.”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선 그 자리에 이번에도 중국은 없었다.


글·사진 베이징=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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