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치료제 나왔으니 백신 안 맞아도 돼”…전문가들 ‘절레절레’

  • 뉴스1
  • 입력 2021년 11월 9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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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약사 머크(MSD)와 화이자의 먹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소식으로 더 이상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안도감’이 퍼지고 있다. 일각에선 치료제가 백신 미접종자들을 위한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잘못된 안도감’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염 자체와 중증화를 ‘예방’하는 백신과, 감염 초기 단계에서 바이러스 복제를 막아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는 절대 ‘대체재’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경구용 치료제를 발병 초기 먹으면 최악을 피해갈 수 있지만, 전문의들은 치료제의 이점과 백신의 예방 효과를 혼동해선 안 되다고 경고한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美 백신 기피층, 먹는 치료제 개발 소식에 ‘화색’

미국 의료전문기관 ‘카이저 패밀리 재단’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은 성인 인구 72%에 달하지만, 접종 속도는 둔화해왔다. 백신 안전성 우려와, 공화당 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입장차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행정부와 주정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접종을 강제하며 접종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 의사에 반하는 이 같은 조치는 백신 접종을 둘러싼 논쟁에 기름을 부어왔다.

이런 가운데 경구용 치료제 개발 소식이 전해지자 백신 접종 캠페인에는 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뉴욕공중보건대가 미 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잠정 결과, 치료제는 백신 접종 독려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대 여론조사를 이끈 스콧 랏잔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설문 응답자 8명 중 1명은 백신을 맞느니 치료제를 먹겠다고 답했다”며 “이는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우려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건 지난 5일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후보 물질 ‘팍스로비드’가 고위험군 성인의 입원·사망률을 89% 낮춘다는 자체 임상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미 식품의약국(FDA) 긴급 사용 승인 심사가 진행 중인 머크·릿지백 바이오테라퓨틱스의 ‘몰루피라비르’ 임상 결과(입원·사망률 50% 감소)보다 고무적인 수치다. 몰루피라비르는 지난 4일 영국 의약품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도 연내 출시가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 베일러의대 학장을 맡고 있는 피터 호테즈 분자바이러스학·미생물학 교수는 “항바이러스제에만 의존하는 건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주사위를 굴려 결정하는 것과 같다”면서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도박을 하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치료제에만 의존하는 건 도박…엄연히 기능 달라”

로이터는 6명의 감염병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결과, 모두 경구용 치료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치료제가 백신을 대체할 수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리아나 웬 조지워싱턴대 공중보건학 교수 겸 응급의학외과 전문의는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개발) 소식은 굉장하지만, 백신을 대체할 순 없다”고 일축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료제와 백신은 기능 자체가 아예 다르다.

코로나19는 발병 초기 국면에서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빠르게 복제되고, 다음 단계인 2차 국면에서는 바이러스 복제 때문에 손상된 면역 반응 결함으로 염증이 진행된다.

항바이러스제는 체내에서 바이러스 복제를 멈추는 기능을 하므로, 발병 초기 짧은 기간 내에 투약하는 게 핵심이다.

대개 코로나 감염의 ‘최악’은 주로 2차 국면에서 발생한다.

비영리 멀티미디어 저스트휴먼프로덕션 설립자 겸 대표 셀린 가운더 감염병 전문의는 “숨이 차는 등 입원이 필요한 증상이 일단 시작되면, 면역 기능이 고장나 항체가 충분히 생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상을 인지하게 됐을 땐 이미 치료제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초기 단계에서 2차 단계로 넘어가는 진행 속도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베일러의대 호테즈 교수는 “바이러스가 복제 단계에서 염증 단계로 넘어가는 창문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일찍 치료를 받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2차 국면으로 너무 일찍 넘어가기도 하고, 좀 늦게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 초기 국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괜찮다고 느끼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이 산소 레벨은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2차 국면(염증 단계)이 시작됐다는 초기 징후 중 하나”라며 “아픈 걸 알게 됐을 땐 너무 늦은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머크와 화이자가 개발한 알약 형태의 치료제는 코로나19 대응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치료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먹는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도 백신 미접종자들이 감염 시 안전장치로 의존한 건 정맥주사를 통해 주입하는 단일클론항체다. 기존 유일한 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도 정맥 주사 형태다.

코로나19 감염과 중증·사망 예방에 있어 백신은 여전히 최선의 대안으로 꼽힌다. 화이자의 백신은 전염력 높은 델타 변이 확산 중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퇴역장병들을 대상을 실시한 실제 임상 결과, 화이자 백신은 입원율을 86.8%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개발한 화이자의 입장도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백신을 안 맞는 건 끔찍한 실수”라며 “치료제는 치료제일 뿐이다. 운 나쁘게 감염된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료제가 (백신을 맞지 않아) 당신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고, 당신 자신과 식구,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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