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됐던 날 구해준 아프간인, 나는 도울 방법이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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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탈레반에 납치됐던 나는 그의 도움 덕에 탈출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의 가족을 카불에서 빼내지 못하고 있다.”

데이비드 로드 뉴요커 기자는 17일(현지 시간) 뉴요커 논평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한 아프간인의 가족들이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카불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로드는 12년 전 뉴욕타임스 기자 시절 탈레반 지휘관의 인터뷰를 제안받았다가 타히르 루딘 아프간 기자와 탈레반에 납치당했다. 7개월 넘는 포로생활 끝에 로드는 감시관이 자는 사이에 루딘의 도움으로 그와 함께 인근 파키스탄 군기지로 탈출했다.

이 사건 이후 이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 2개월 차에 탈레반에 납치됐던 로드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전쟁 기사를 쓰지 않았다. 루딘은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우버 기사, 아마존 배달일을 하며 본국에 남은 대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2017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나이가 많은 자녀 다섯 명을 우선 미국으로 데려왔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 계획으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할 조짐을 보이자 루딘은 올해 3월 본국으로 돌아가 남아있던 아내와 어린 두 자녀(6살, 4살)의 비자를 신청했다. 로드는 미국 시민권자인 루딘의 가족이 쉽게 비자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카불을 떠나려는 아프간인들의 비자 신청이 쏟아지면서 비자 처리 속도는 늦어졌고 루딘은 남은 가족들의 비자를 받지 못한 채 6월 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로드는 미국 관료들에게 아프간에 있는 루딘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올 방법을 수소문 했지만 비자 우선권은 현지 통역관 등 현지 미군 보조 인력 2만 명에게만 있다는 답을 들었다. 2만 명 중에서도 지금까지 미국으로 안전하게 탈출한 아프간인은 2000여명 뿐이다.

로드는 이날 NPR 라디오에서 “뉴욕커에 기사가 나가고 루딘이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가족들을 군 수송기에 태워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며 “루딘 가족들이 이 통행증으로 겨우 공항에 갔는데 탈레반이 총을 쏘고 사람들을 때리는 공항에서 10시간 넘게 기다리라는 말만 듣다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로드는 “미국 외교관들만 구출되고 있고 아프간 사람들은 배제되고 있다”며 자국 외교관의 안전만 신경쓰는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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