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보다 이란이 더 싫다”… 초강경파 당선에 술렁이는 중동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글로벌 현장을 가다]

이슬람 시아파 초기 지도자인 후사인 이븐 알리의 머리가 묻힌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알후사인 모스크 전경. 2013년 2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34년 만에 처음 현직 대통령으로 이집트를 찾아 양국의 관계 개선을 논의했다. 당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 모스크를 찾았을 때 카이로 시민들은 “시아파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전 이슬람권이 협력해야 한다”며 논쟁을 벌였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이슬람 시아파 초기 지도자인 후사인 이븐 알리의 머리가 묻힌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알후사인 모스크 전경. 2013년 2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34년 만에 처음 현직 대통령으로 이집트를 찾아 양국의 관계 개선을 논의했다. 당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 모스크를 찾았을 때 카이로 시민들은 “시아파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전 이슬람권이 협력해야 한다”며 논쟁을 벌였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5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알후사인 모스크를 찾았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시아파 초기 지도자인 후사인 이븐 알리(626∼680)의 머리가 묻힌 성지(聖地)다. 2013년 2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다. 그는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의 이슬람 혁명 후 34년 만에 이란 대통령 자격으로 이집트 땅을 밟았다.》





이란은 혁명 직후 이집트가 팔레비 왕가 일원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과 국교까지 맺자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주도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총격으로 숨지자 사다트 사망을 노골적으로 반겼다. 암살범의 이름을 딴 길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이집트 또한 이런 이란을 곱게 볼 리 없었다.

이란은 21세기 들어 핵개발 추진에 따른 서방 제재가 이어지고 외교 고립이 심해지자 중동 내 우군을 만들기 위해 이집트에 손을 내밀었다. 8년 전 아마디네자드의 방문 또한 이런 취지에서 이뤄졌다.

당시 카이로 시민은 격렬한 찬반 시위를 벌였다. 방문 반대자들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지도자가 왜 수니파 국가인 이집트에 오느냐”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찬성파는 “팔레스타인 지원 등을 위해 전 이슬람권이 단결해야 한다”며 맞섰다.

모스크 앞 칸엘칼릴리 시장에서 상인 아델 무함마드 씨(42)를 만났다. 8년 전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란이 중동 전체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란 대통령의 방문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았다”며 “일부는 아마디네자드에게 신발을 던지려다가 제지당했다”고 했다. 신발을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이슬람권에서 신발 투척은 최고 수준의 모욕을 뜻한다. 이처럼 수니파와 시아파의 간극이 상당했던 탓에 현직 이란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두 나라는 이후에도 미지근한 관계를 이어왔다.

8년이 흐른 지금 수니파 이슬람국과 이란의 관계는 어떨까. 이집트는 물론이고 이란과 중동 맹주 자리를 놓고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은 지난달 18일 이란 대선에서 초강경 시아파 성직자 에브라힘 라이시(61)가 승리하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라이시는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반체제 인사 수천 명의 숙청을 주도해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랐고 ‘테헤란의 도살자’란 별명도 얻었다.

8월 임기를 시작하는 라이시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2) 밑에서 공부한 성직자 출신 법조인이다. 지난해 1월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지자 그는 장례식장에서 하메네이 옆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공격을 승인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복수도 다짐했다.

수니파 이슬람국은 라이시가 노골적인 반미, 반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면 중동 전체의 불안이 고조되고 자국의 이해관계에도 좋을 것이 없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수니파 이슬람국은 이스라엘과 ‘공동의 적’ 이란을 견제하고 정보기술(IT) 생명과학 등 이스라엘이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산업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초강경파 시아파 성직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초강경파 시아파 성직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이스라엘과 밀착하는 국가는 UAE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미 행정부의 지원 속에 이스라엘과 수교한 후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이스라엘대사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UAE와 경제·무역 협력을 위한 협정에도 서명했다. UAE는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 도입 승인을 얻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로부터 이란과 시아파 반군에 관한 정보도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줄곧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했던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또한 표류하고 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행정부가 이란과 핵합의를 맺었을 때 이란의 우라늄 농축 농도는 20% 정도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등 제재를 강화하자 발끈한 이란은 이를 60%로 대폭 높였다. 통상 우라늄 농축 수준이 85∼90%에 이르면 언제든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

라이시 당선인은 2015년 핵합의 체결 때부터 서방과의 핵합의에 부정적 태도를 보여 왔다. 그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을 믿지 않는다며 서방이 먼저 제재를 풀어야 이란 또한 핵합의 복원 협상에 참석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핵협상 복원의 전제 조건으로 “이란이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세력은 올해에만 수도 바그다드의 미군 주둔 지역에 약 50차례 드론 및 로켓 공격을 가했다.

이란 핵합의 복원이 불투명해지자 국제유가 또한 출렁이고 있다.


6일 영국 런던시장에서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9월분) 가격은 배럴당 74.53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초 50달러대보다 대폭 올랐다. 세계 4위 원유 보유국인 이란에는 세계 전체 매장량의 9%에 달하는 1556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다. 당초 핵합의 복원으로 이란이 원유 수출을 재개하고 국제유가 또한 안정세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런 기대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란 또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 러시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자국산 위성 ‘카노푸스V’ 장비를 이란에 전달하는 등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3월 중국과도 향후 25년간 광범위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라이시 당선인이 집권하면 이 협정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동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이스라엘과 협력하겠다는 수니파 이슬람국의 기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
#이스라엘#이란#중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