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털사 인종 대학살(Tulsa Race Massacre) 100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제도적인 인종차별을 근절하고 그로 인해 파괴된 지역사회와 삶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범정부적으로 인종 정의를 전진시키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그리고 우리 법과 정책, 마음으로부터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그린우드 지역사회와 블랙월스트리트의 유산을 기리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 폭력 사건으로 불리는 털사 인종 대학살은 1921년 5월31일부터 6월1일까지 이틀간 오클라호마주 털사 그린우드 지역에서 백인들이 흑인 주민들을 살해하고 흑인들이 운영하는 상점과 거주지를 처참하게 파괴시킨 사건을 말한다.
지역 고등학교의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흑인 딕 롤랜드가 백인 엘리베이터 안내원 새라 페이지를 공격하려 했다는 오해를 사 재판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날 롤랜드가 실수로 페이지의 발을 밟은 것인지, 중심을 잃고 페이지 쪽으로 넘어진 것인지, 또는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며 다만 흑인 청년이 백인 여성을 공격하려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분노한 백인 폭도들이 그린우드로 몰려왔고 흑인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전했다.
2001년 오클라호마주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백인들은 그린우드의 거의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역사회 소유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최대 300명의 흑인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1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우드는 ‘블랙 월스트리트’로 불릴 정도로 미국 내 가장 부유한 흑인 동네였지만 이 사건으로 폐허가 됐다.
사건의 중심 인물인 롤랜드는 결국 혐의를 벗었고, 사건 직후 털사 보안관 윌리엄 맥컬로우의 도움으로 도시를 빠져나갔다. 롤랜드와 페이지의 행방은 그 후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털사 인종 대학살의 생존자인 레시 베닝필드 랜들(106)은 “불타오르던 집과 트럭 뒤편에 쌓여있던 시신들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날 털사에서 열린 사건 100주기 행사에서는 랜들과 또다른 두명의 생존자 비올라 플레처(107), 휴 밴 엘리스(100)가 참석한 가운데 퍼레이드가 열렸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2000만달러 규모의 기념관도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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