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짜리 대역” 휘청이는 스가… 아베 재등판설 커져[글로벌 포커스]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21-05-08 03:00수정 2021-05-0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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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9개월 日총리 ‘사면초가’
‘중간평가’ 재보선서 참패
9월 자민당 총재 재선 빨간불
차기 총리, 고노-이시바 등 각축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3)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총리의 ‘핀치 히터(pinch hitter·대타)’에 불과하다. 재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중진 의원이 최근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스가 체제로 총선(중의원 선거)을 치르는 것이 불안하다며 “스가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주력하고 선거는 새 총리가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지난달 25일 3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졌고 7월 4일 도쿄도의회 선거가 있다. 총선도 실시된다. 스가 총리는 최근 월간지 인터뷰에서 중의원 해산 및 총선 시기에 대해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9월 말까지 어느 시점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에는 차기 총리가 될 집권 자민당 총재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이 열린다.

선거 정국을 더 요동치게 만드는 요인은 스가 총리의 낮은 지지율이다. 지난해 9월 중도 사퇴한 아베 전 총리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아 취임한 그는 코로나19 부실 대응, 공무원으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은 장남 문제, 전임자에 비해 빈약한 존재감 등으로 내내 고전하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58) 행정개혁담당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4) 전 자민당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40) 환경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이 자천타천으로 차기 총리를 노리는 가운데 아베 전 총리의 재등판설까지 나오고 있다.

주요기사
○재·보선 참패로 휘청이는 스가

스가 총리는 취임 초 휴대전화 요금 인하, 디지털화, 규제 개혁 등 생활밀착형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외교, 안보, 개헌 등 거대 담론을 언급하지 않았고 전임자의 노골적인 우익 행보를 따르지도 않았다. 국민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말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스가 내각의 지지율은 65%를 기록했다. 두 달 전 아베 내각의 지지율(33%)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좋은 시절은 짧았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0월 초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신임 회원을 임명하면서 이 중 정부에 비판적인 회원 6명을 거부하자 “학문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학술회의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 단체여서 회원 임명 시 총리 결재가 필요하다. 당시 유명 언론사 논설위원은 기자에게 “새 정권이 정책 추진에 쏟아야 할 힘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학술회의 대응에 허비하고 있다. 안타깝다”고 했다.

방역은 지금까지 스가 정권을 괴롭히는 사안이다.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5인 이상 회식 자제’를 요청해 놓고 지난해 12월 총리 본인이 8인 회식을 가졌다. 비슷한 시기 자민당 중진과 주요 장관들도 잇달아 방역 지침을 어겼다. 그 결과, 내각 지지율은 올해 1월 스가 집권 후 최저치인 33%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변이 바이러스 창궐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의 4월 조사에서도 스가 내각의 지지율은 40%에 그쳤다.

분노한 민심은 지난달 25일 홋카이도, 나가노, 히로시마 3곳에서 실시된 재·보선에서 확인됐다. 자민당은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히로시마를 비롯해 3곳 중 1, 2곳에서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3곳 모두 패했다. 스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겸 총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재·보선 참패로 그의 재집권 가능성 역시 빨간불이 켜졌다.

○스가의 3대 과제

4일 요미우리신문은 스가 총리가 ①도쿄 도의회 선거 승리 ②7월 말까지 고령자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 ③도쿄 올림픽 성공 등을 통해 재집권을 달성하겠다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셋 중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데 있다.

현재 도쿄도 의회는 127석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9) 도지사가 이끄는 지역 정당 ‘도민퍼스트회’가 46석으로 가장 많다. 자민당(25석), 공명당(23석), 공산당(18석) 등이 뒤를 잇는다. 이전까지 도의회 다수당이었던 자민당은 4년 전 선거에서 도민퍼스트회에 참패했다. 당시 압승을 이끌었던 고이케 도지사는 코로나19 방역, 쓰키지 수산물시장 이전 등 주요 사안에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고이케 도지사는 집권 후 당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가 다시 도민퍼스트회 대표로 복귀해 도의회 선거를 진두지휘하면 자민당 의석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역 상황도 좋지 않다. 4월 말 기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약 2%에 불과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다. 스가 총리는 지난달 “7월 말까지 65세 이상 3600만 명에 대한 백신 2회 접종을 마치겠다”며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밝혔다. 의료 전문가들은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지도, 접종률이 높지도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도쿄 인근 요코하마항에서 출발한 호화 유람선 ‘아스카Ⅱ’호에서 확진자 1명이 나온 것도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전에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승객 302명을 태웠고 승선 당일에도 코로나19 검사를 했는데 출항 하루 뒤 60대 남성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2월 탑승자 3700여 명 중 712명이 집단감염돼 ‘바이러스 배양접시’로 불렸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 올림픽도 제대로 치러질지 알 수 없다. 오자키 하루오(尾崎治夫) 도쿄도의사회 회장은 3일 아사히TV 인터뷰에서 “도쿄의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명 내외가 아니면 올림픽 개최가 어렵다”고 우려했다. 현재 도쿄의 일일 신규 확진자는 500∼1100명대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사설에서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마주하자”며 올림픽 취소를 주장했다. 도쿄 올림픽 홍보를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할수록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시 떠오르는 아베

자민당 내에서 아베 전 총리의 재등판을 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도 스가 총리를 껄끄럽게 만든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8일 아베 전 총리가 부쩍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퇴임 직후 대외 활동을 자제했던 그가 최근 외부 활동을 늘리는 것은 보수파 대표 정치인으로서 자민당 안팎에서 영향력을 가지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자민당 총재는 겉으로는 경선을 통해 뽑히지만 사실상 당내 7개 파벌의 합의, 추대, 이합집산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다. 스가 총리 또한 아베 전 총리가 퇴진 의사를 밝히기 전 지난해 주요 여론조사에서 총리 후보로 5위 안에 든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베 퇴진 후 당내 실력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82) 간사장이 가장 먼저 ‘스가 지지’를 선언하고 이후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동참한 결과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로 의원 96명을 보유한 호소다파에 속해 있다. 호소다파 의원들은 최근 그의 재집권을 거론하며 주요 행사에 앞다퉈 초청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달 22일 호소다파 다카토리 슈이치(高鳥修一·61) 중의원 의원의 부탁을 받고 의원모임 ‘보수 단결의 모임’에서 강연했다. 이 행사 외에도 4월에만 ‘탈탄소사회 실현과 국력 유지 추진 의원연맹’, ‘전통과 창조의 모임’,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 등 3곳에서 고문 혹은 최고 고문으로 취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주요 정치인 중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재임 내내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의 헌법을 개정할 것을 강조했다. 현직 총리였던 2013년 12월에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 중국 등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지난해 8월 총리 퇴임 후 현재까지 무려 세 번을 더 참배했다. 콘크리트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결집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의 중도하차 이유로 꼽혔던 ‘벚꽃을 보는 모임’ 관련 의혹, 위궤양 등 건강 문제 등도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2019년 현직 총리였던 아베가 매년 봄 정부 세금으로 개최되는 벚꽃 관람 행사에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주민을 초청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야권이 문제를 제기하는 와중에 아베 정권이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더 커졌다.

3월 도쿄지검 특수부는 시민단체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아베 전 총리를 무혐의로 처리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새로운 약을 써서 상태가 좋다”며 건강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그는 3일 BS후지방송에 출연해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원으로서 총리를 전력으로 떠받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며 재등판설에 일단 선을 그었다.

○고노, 이시바, 고이즈미 등 각축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23∼25일 전국 성인 1026명을 대상으로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을 물어본 결과, 고노 행정개혁담당상이 24%로 1위를 차지했다.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15%), 고이즈미 환경상(14%), 아베 전 총리(8%), 기시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5%), 스가 총리(4%) 등이 뒤를 이었다.

고노 담당상은 아베 정권에서 외상, 방위상을 지냈고 스가 정권에선 행정개혁을 담당하고 있다. 1월부터는 신설된 백신 담당 각료까지 겸임하고 있다. 행정개혁과 백신 모두 스가 총리의 최우선 과제다. 스가 총리가 그만큼 고노 담당상을 믿고 중책을 맡겼다는 의미다. 둘은 1996년 처음 중의원 의원에 뽑힌 의회 동기다. 스가 총리 또한 예전부터 주변에 “고노는 총리감”이라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은 1993년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 최초로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84) 전 자민당 총재다.

고노 담당상은 개인 인지도와 여론 지지도가 모두 높은 편이지만 당내 장악력이 높지 않다. 패거리 문화를 싫어하고 술을 즐기지 않아 자민당 내에서 ‘아웃사이더’로 꼽힌다. 주요 파벌을 이끄는 소수 정치인의 합의와 추대로 결정되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일본 주요 정치인 중 과거사, 한일 관계 등에서 가장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시바 전 간사장,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9)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환경상 또한 여론 지지도는 높지만 당내에서 충분한 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스가 총리의 재선 여부 또한 파벌 간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취임 때부터 아베의 ‘그림자무사(影武者·가게무샤)’로 평가받았던 그가 진짜 ‘쇼군(將軍·무사의 최고 통치자)’에 오를 수 있을까.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휘청이는 스가#아베 재등판설#중간평가#사면초가#자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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